2015년 2월 15일, 일요일
20대 말기는 울분과 불평으로 점철된 질풍노도의 시집살이 기간이었다.
도대체 이 시집살이는 영원히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이나 괴롭고 두려웠다.
내 인생에 끝이 보였던 것은...그때만 해도 노산이라 했던 38살의 둘째 출산이었다.
이 애가 38살이면 나는 76살...이 애가 40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이 애가 20살이 되면 아버님은 88세...이 애가 할아버지와 얼마나 함께 할 수있을까? 하며 끝을 생각했다.
결국 아버님은 작은 애의 2살 생일을 보시고 돌아가셨다.
막연히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실히 느꼈다.
- 지금, 그래, 지금 하자! 생각 났을 때 실행하자!...가 새로운 행동 지침이 되었다.
시집살이 할 때는, 너무 젊었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10년 뒤에 분가시켜줄께~했으면 어땠을까?
임신은 10달, 군대는 2년 몇개월이라는 기한이 있어 참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가 없는 외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정말 무기징역 같았다. *^^*
죽음...죽음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끝]이다.
인생에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도 죽음은 나와 무관하다 믿는 것은 어째서일까?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 누구나 놀란다. 처음 듣고 보는 것처럼 놀란다. 어찌 이럴수가~하며!
오늘 가톨릭다이제스트 3월호를 읽다가 윤학대표가 암환자가 된 것을 알았다.
그는 수술을 하지 않고, 암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단다.
그리고 암을 의식하며 생활을 바꾸니 나름 새로운 생활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유년시절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의 초등학교 친구가 죽었더란다.
윤학대표는 그 친구의 관뚜껑이 닫히고 먼 산에 묻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리고 알았단다. 누구나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엄마도, 아버지도, 동생도...
그리고는 자주 먼 산을 바라보았더란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야단을 하셨단다. '먼 산 보는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 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그와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 것을 걱정하는 엄마가 같은 세상 사람일까? *^^*
그는 죽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을 다르게 살게 된다고 썼다.
그래서 그가 적자인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읽으며 자란 청년을 사위로 맞은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암과 같이 가겠다는 암환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기한이 있는 시집살이를 이야기할 군번이 아니다.
인생의 끝을 바라볼 수 있는, 의식할 수 있는 의젓한 나이가 되었다.
끝이 있음, 죽음을 끝으로 완성되는 삶이 행복하다.
[나]라는 작품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기쁨에 흥미진진하고 행복하다.
나는 어떤 모습의 삶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
헬쓰 조선의 홍헌표님, '나는 암이 고맙다'~역시 멋진 분들은 서로 통하는 듯 합니다.
윤학대표님도 [웃음보따리] 회원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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