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

[29]타협이 아닌 평화입니다 (수 18:1~10) (CBS)

colorprom 2015. 2. 3. 19:44

타협이 아닌 평화입니다 2015년 2월 3일 화요일


여호수아 18:1~18:10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 올 것이라

5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8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하니

9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실로 진영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10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성경 길라잡이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1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회막이 위치한 실로는 왕정시대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지리적으로 떨어져있는 열두지파를 묶는 정체성이었다.

또한 남은 일곱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는 일이 실로의 회막 앞에서 이루어진 것도,

하나님께서 기업을 나누어주시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3지파의 기업 분배를 마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실로’에 모이게 한 다음

먼저 회막을 세우게 하는데, 이는 아마도 요셉 자손의 항의 사건(17:14-18) 이후 남은 7지파가

기업 분배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전(殿)인 회막을 세움으로써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고취시켜 새로운 전기를 마련코자 했던 것이다.


회막을 세웠으며(1절): ‘회막’(會幕)은 히브리어로 ‘만남의 장막’이란 뜻인데,

이는 이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셨기 때문이다.

이 회막은 모세시내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시대로 만든 것이었다(출 25:8, 21,22).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3절):

‘지체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태만하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남은 지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취하여 누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에 여호수아는 남은 지파들을 격려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믿음으로 취하도록 촉구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6절):

제비뽑기라는 방식을 통해,

각 지파가 가진 힘과 군사력이 기업을 나누는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지하였다.

기업을 분배하는 일에 각 지파의 욕망이 개입되었다면 이스라엘에 내전이 발생할 위험도 있었다.

 

타협이 아닌 평화입니다 2015년 2월 3일 화요일

 

과거나 지금이나 모두의 이익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외부로부터 말미암은 큰 위기는 용케 넘긴 집단이,

정작 내부에서 논공행상을 두고 분란이 일어나 스스로 붕괴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은 기껏해야 이익을 미끼로 불안한 ‘타협’을 만들 수 있을 뿐,

진정한 평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타인에 대한 적개심 자체를 버리는 것이 진정한 ‘평화’의 출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실로의 회막 앞에 모여 자신이 아닌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과 힘에 의지해 기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몫을 가짐으로써 내분의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냉전이 종식되자,

온 세계에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전쟁은 곳곳에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내재되어있던 다른 인종에 대한 적개심이, 다른 종교에 대한 폭력이, 물과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곳곳에서 잔인한 학살로 이어졌고, 지금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세상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 가득한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평화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평화를 먼저 누리고 보여줌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신앙공동체 안에 혹시 내가 증오와 적개심을 품은 대상이 있다면,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합시다.


내가 회복해야할 하나님의 약속과 사명 2015년 2월 3일 화요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레 26:11-12) 회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만나주시고 그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단지 가나안에서 누리게 될 부요하고 안정된 삶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어가는 약속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한편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서 대표를 뽑아 아직 점령하지 않은 가나안 땅들에 파견하여

그곳을 파악하게 합니다. 그리고 돌아 온 그들을 회막 앞에 세우고 제비를 뽑아

그 땅들을 7지파에게 분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한 채 그들의 사명에 태만한 이스라엘에게 일어나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내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한 채 행동하지 않는 영적 게으름은 없는지

잘 살펴야만 합니다.

만일 있다면 나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 행동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지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묵상질문

 

- 신앙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양상은 어떠하며, 주로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 지체들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고 있습니까?

   적개심을 숨기는 ‘타협’입니까? 적개심 자체를 버리는평화’입니까?


1 여호수아가 각 지파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 땅을 파악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내가 회복해야할 하나님의 약속과 사명은 무엇인가요?

 

기도

 

+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익에 속아 판단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 신앙공동체가 맞이한 갈등 앞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망각한 채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나를 살피게 하시고,

만일 그렇다면 속히 하나님의 약속을 찾고 일어나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