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35]부활의 모든 근거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고전15:45~15:58 /(CBS)

colorprom 2013. 12. 9. 16:02

부활의 모든 근거는 그리스도이십니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고전15:45~15:58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성경 길라잡이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45절):

바울은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에 ‘첫’과 ‘아담’이란 단어를 삽입한다.

즉 ‘첫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다.’ +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라는 의미이다.

옛 질서, 그리고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생명을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 사이의 강력한 대조이다.

그리스도는 새 인류와 새로운 존재의 질서의 머리이며 대표자다.

 

 부활의 모든 근거는 그리스도이십니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의 성격과 특성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모양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놀라운 변화를 겪을 것인데, 그 변화는 승리가 죽음을 삼킨 변화일 것이며,

그 승리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부활의 새로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부활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과 부패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천국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은 것으로 거룩함과 사랑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죽음의 독침이 제거된 것을 확인하며,

이제 죽음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더 가까이 가는 통로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이 30절부터 32절까지에서 말했던 수고와 땀 흘림에 관해 다시 권면하는 것을

큰 기쁨과 굳은 확신 가운데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8절).


부활을 소망하며 삽시다 (2018년 4월 3일 화요일)


우리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기 때문에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으며, 불의를 볼 때 분노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은 우리가 잘 조절해야 합니다.

만약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는 대책 없이 감정의 지배를 받게되고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감정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나옵니다.

감정이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감정이 나를 선택하게 하지 말고 내가 감정을 선택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내가 감정을 지배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잠깐이라도 생각하면서

그러한 감정을 선택한 것이 옳은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감정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감정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의 믿음새로운 감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평안과 희망의 감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냥 죽음을 생각한다면, 허무와 두려움, 공포의 감정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있으면 그러한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영생의 길을 나도 간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평화와 소망의 감정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게 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삽시다.


+ 매순간마다 나의 믿음과 생각이 감정을 선택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부활 (2018년 5월 18일 금요일)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참기 어려운 때는 희망이 없다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그때 비기독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희망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견뎌나갑니다.

비기독교인 즉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희망은 죽음 이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생의 삶을 초월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같은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하신 말씀입니다.(고전15:50)

하나님나라를 받는 우리의 모습이 지금의 ‘혈과 육’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지금과 같은 육체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활은 그런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예수님은 이 세상에 패배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 대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는 그분이 주신 부활소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주님, 우리가 부활소망을 갖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우리가 마지막에 입을 형상은 누구의 형상입니까?

-  왜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습니까?

 

기도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부활의 소망 가운데 지치지 않고 끝까지 주의 일을 힘써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