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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교회는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마가 14:27~42) (CBS)

colorprom 2013. 3. 25. 13:43

교회는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2013년 36월 25일 월요일


마가 14:27~42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닌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껫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와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1)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라. (27) = (스가랴 13:7~9)

스가랴 예언은 전체적으로 예수께서 지금 처해 있는 상황, 즉 수난주간 (막 11~15장)과 일치한다.

예루살렘이 예수를 버린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다. 

목자가 공격을 당하고 양들은 흩어지며, 온 땅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오직 남은 자들만이 살아날 것인데,

회개하는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은 응답을 받을 것이다.

스가랴의 예언은 마가 13장의 종말에 대한 말씀의 요점들을 요약하고 있다.

 

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32) = 겟세마네의 히브리어 뜻은 '기름 짜는 틀'이다.

감람산 기슭의 완만한 경사인 기드론 계곡 동쪽의 지명으로,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신 기도의 현장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교회는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2013년 36월 25일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이제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곧 닥칠 현실에 대해 제자들과 대화하시며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도망할 것과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착한 겟세마네에서, 마셔야 되는 마지막 잔을 놓고 피땀을 흘리는 고뇌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응답받지 못한, 그러나 온전히 응답받은 주님의 기도를 만나게 됩니다. (히 5:7)

 

'아빠, 아버지'께 절박한 기도를 드리는 극도로 친밀했던 그 순간은,

동시에 침묵의 응답을 듣고 십자가의 길로 나서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침묵을 응답으로 받은 기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 이 기도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나서는 걸음, 이 걸음이 진정 우리가 따라 걸어야 하는 걸음입니다.

 

오늘을 사는 교회는 이 고뇌의 기도의 자리에,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종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결기에 찬 거짓된 충성심 가운데서도,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동산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한 십자가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을 향한 기도의 응답만을 간증하고 다닐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현장에서 고뇌하며 서 있어야 합니다.

이 고뇌에 찬 기도가, 이 시대의 교회가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깨어있는가?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마가 14:26~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막14:31)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 내용처럼

그날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한편 방금 전, 베드로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맹세라도 하듯 대답하기도 했지요.(막14:29)

예수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그것이 베드로의 절절한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막상 현실은 전연 달랐지만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렇다 치고 오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겠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경건한 기독교인으로 살겠다, 절실히 고백하곤 합니다.

그러면 실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자주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보다 물질, 예수님보다 자녀, 예수님보다 출세를 우선시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꼭 말로만 "모릅니다" 부인하는 것만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쩌면 세 번이 아니라 삼십 번 이상, 아니 매순간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주님, 항상 깨어 기도할 힘을 우리에게 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1) 제자들은 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말씀보다, 자기들이 도망할 것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2) 거절을 응답받은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기도

 

거짓된 충성심에 스스로 속지않게 하시고 겸손히 주를 따르는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이 땅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기도응답을 포기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