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들리는 소리, 안 들리는 소리
‘머레이의 잘생긴 백작’이란 스코틀랜드 노래에
‘레이드 힘 온 더 그린(laid him on the green·그를 풀밭에 눕혔네)’이라는 대목이 있다.
노래를 들은 한 미국 작가는 해당 구절을
‘레이디 몬더그린(lady Mondegreen·몬더그린 아가씨)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작가는 훗날 귀로 듣는 것의 부정확함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사례를 들었다.
그 후 특정 문장을 자신이 아는 다른 말로 잘못 듣는 현상을
‘몬더그린(Mondegreen) 효과’라고 부른다.
![](https://blog.kakaocdn.net/dn/dbpS6M/btrNb8Kswda/mYoLQb7xg1aN3k362uhhbK/img.jpg)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의 노래 ‘피지컬’ 가사엔
‘렛 미 히어 유어 보디 토크(let me hear your body talk)’라는 부분이 있다.
이게 한국말로 ‘냄비 위에 밥이 타’로 들린다는 이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들린 것은 아니다.
한 개그맨이 “팝송에 우리말 가사가 있다”며 ‘냄비 위에 밥이 타’라고 말한 뒤부터다.
특정 정보에 점령된 귀가 팩트를 외면하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욕설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노 후보가 연설 도중 안상영 부산 시장을 거론하며 “아이x”라 욕설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 후보는 “안 시장이라 말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녹음을 반복해 틀어봤지만 발음이 불분명해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 대선을 좌우했던 김대업씨의 녹음테이프도 음질이 나빠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는 자기들 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 했다.
▶인간은 눈으로 대화하는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입을 보며 대화하는 ‘독순술’(讀脣術)이 대표적이다.
첨단 기술일수록 귀보다 눈을 활용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DeepMind)는
화자의 입술 모양만으로 전체 문장을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선보였다.
인공지능이 읽는 입 모양이 귀로 듣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앞서 유튜브도 2009년, 동영상에 자막이 자동으로 표시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에서 회의장을 나오며 한 사적 대화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MBC는 ‘XX’와 ‘바이든’이란 자막을 달아 해당 화면을 내보냈다.
막상 윤 대통령 말에서 또렷이 들리는 건 “쪽팔려서 어떡하나”뿐인데도 그렇게 했다.
미국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눈은 리얼리스트이지만 귀는 믿고 창조한다”고 했다.
귀보다 눈이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에선 방송 자막조차 귀만큼이나 못 믿을 게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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