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사람 갖고 놀기’에 맛들이기 시작한 악마고래
지상 최대의 돌고래 ‘범고래’…야생에선 똑똑하고 흉포한 사냥꾼으로 악명
포르투갈 해안서 보트 공격 사례 보고
야생에선 인간 공격한 적 없기에 관심과 우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폭발적 인기 덕에 요즘 고래는 가장 핫한 짐승으로 떠올랐습니다. 사람과 같이 허파로 숨쉬는 젖먹이동물이지만, 평생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살아가는 이 피조물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이 이어지고 있어요. 덕분에 세상에 살고 있는 별별 고래들의 존재도 주목받고 있죠. 바다의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외뿔고래(일각고래), 아마존에 사는 전설의 분홍색 민물 강돌고래, 대왕오징어와 필생의 라이벌전을 이어가는 향유고래, 귀여운 외모 때문에 생포1순위로 수난을 당한 벨루가 등 고래 생태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도 다시금 소환되고 있지요. 그 중 어떤 고래가 가장 무서울까요?
이렇게 뜬금없고, 비논리적인 질문도 없을테지만, 고래의 생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 중 열에 여덟명은 바로 이 고래를 꼽을 것입니다. 살인고래(Killer Whale)이라는 섬뜩한 예명을 가진 범고래(오르카·Orca)이죠. 고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입의 모양에 따라 이빨고래와 수염고래가 있어요. 고래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를 비롯해 수염고래들은 대부분 물과 함께 물고기나 플랑크톤을 삼킨 뒤 물을 걸러내는 식으로 식사를 합니다. 반면 돌고래로 대표되는 이빨고래는 직접 사냥을 해서 으적으적 찢어먹고 씹어먹죠. 사냥꾼들입니다. 몸길이가 10까지 자라는 범고래는 돌고래류중 가장 덩치가 큽니다. 몸집만 큰게 아닙니다. 사냥술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은데다, 잔혹하기까지 하거든요.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볼트모트쯤 될지도 모릅니다.
물개·강치·물범·상어. 범고래 식단에 올라와있는 종류들입니다. 사냥꾼들의 사냥꾼이죠. 같은 고래족(族)이라고 봐주는 일도 없습니다. 자신들보다 덩치가 작은 돌고래, 혹은 덩치가 큰 수염고래들의 새끼까지 노려요. 많게는 50마리까지 무리를 지어사는데, 조직적인 사냥술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특히 유명한게 물개를 노린 상륙 사냥입니다. 파도를 타고 모래사장까지 습격해서 볕을 쬐고 있던 물개나 물범을 나꿔챈뒤 물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놀이가 시작됩니다. 아직 상처없이 멀쩡한 물개 성체를 가지고 유희를 는 거죠. 헤딩슛을 날리듯 머리로 들이받는가하면 꼬리로 내동댕이 칩니다. 가엾은 물개는 축구공이 됐다 다시 셔틀콕이 되며 잡아먹히기 직전까지 범고래들의 심심풀이 장난감으로 전락하며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합니다. 인간의 윤리와 감정을 들이밀 수가 없는 곳이 자연과 야생이지만, 피식자 입장에서 이 고래는 분명히 악마적 존재라고 할 수 있죠. 범고래의 악명높은 물개사냥 장면을 담은 BBC 어스 동영상입니다.
고래중에서 ‘맹수’이면서 ‘괴수’이며 또한 ‘영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마 범고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고래는 사람들에게는 매혹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자취를 감춘 돌고래쇼. 몇몇 대형 수족관들은 범고래쇼를 도입했습니다. 여느 돌고래보다 몇배나 큰 덩치, 그리고 흑과 백의 선명한 몸색깔을 가진 범고래가 점프하는 모습은 관객들을 탄성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요. 그런데 이 쇼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범고래의 존재는 사뭇 공포스럽게 다가옵니다. 2010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유명 해양테마파크인 시월드에서 쇼를 하던 틸리쿰이라는 이름의 수컷 범고래는 쇼를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별안간 베테랑 여성 조련사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 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이 범고래는 앞서도 새내기 조련사와 무단침입 노숙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었어요. 야생에서 포획된 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동물의 과거 삶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일단의 동물보호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무에 충실하던 조련사의 비극적 희생을 인간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인간이 범고래를 보는 눈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합니다. 범고래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러나 묻혔던 사례도 드러납니다.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남성 조련사가 범고래에 의해 익사당하기 직전 살아남았던 사건도 그 중 하나죠. 그 장면이 아래 미국 CBS 뉴스의 유튜브 동영상에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실제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진 범고래의 인간 공격사례를,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인간 책임론’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과 주장을 깨뜨리는 뉴스가 들려왔어요. 야생의 먼바다에서 범고래가 사람을 해꼬지한다는 소식이 최근들어 잇따라 들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범고래의 인간 습격 소식은 그간 야생에서 보고된 바가 없었다는 점에서, 관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뉴스입니다. 지난달 포르투갈 해안에서 범고래떼가 보트를 들이받아 그대로 침몰시켰습니다. 보트에 있던 다섯명은 가까스로 구명조끼를 입고 물위를 떠다니다 근처를 지나던 고깃배에 구조됐어요. 스미스소니언매거진을 비롯한 많은 매체들이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사례가 비상한 관심을 끈 것은, “야생에서 범고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범고래 사이에 실재하던 보이지 않는 경계선, 서로를 경계하되 건드리지 않는 그 선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리적으로만 본다면, 인간의 신체도 그저 강치나 물개, 물범 같은 맛좋은 고깃덩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 자각되는 순간 ‘공존’은 ‘공포’가 됩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 등에 따르면, 많은 연구자들이 이번 케이스를 심층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래의 행동 양태 뿐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도 걸린 일이거든요. 여러가지 가설이 제시됐습니다. 모터와 프로펠러로 작동하는 보트에 대한 강렬한 관심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는 분석이 있는가하면, 자라나는 어린 고래들의 본능적인 유희 본능이 발동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1990년대 일군의 어린 범고래들 사이에는 사냥할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장난으로 물고기를 죽인 뒤 물고기 사체를 머리로 주고받는 ‘놀이’가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런 일시적인 유행의 맥락에서 보자면, 인간 입장에서는 목숨이 걸린 장난이죠. 돌고래들은 뛰어난 지능과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그 뛰어난 의사소통 체계를 통해 배 들이받기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질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저 한 순간의 유행으로 스쳐가는게 사람에게는 최선의 시나리오입니다. 이들이 어떤 경로로 사람고기에 맛을 들이고, 사람사냥이 유행으로 번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삼류 SF 공포 영화 같은 망상을 하다가도, 만의 하나 그렇게 될 수도 라는 생각에 이르는 것은, 이들이 무섭도록 잔혹하고, 경악스럽도록 똑똑하며, 끔찍한 살상병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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