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북 외교관들의 '전문성'

colorprom 2022. 9. 7. 16:56

[특파원 리포트] 선동에 취약한 민주주의

 

입력 2022.09.07 03:00
 

한 직업 외교관이 3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같은 임지에서 근무하던 북한의 카운터파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북 외교관이 걱정인지 면박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렇게 잠깐 있다 가면 전문성은 어떻게 키웁니까?”

해외 공관 우리 관료들이 북측에서 빈번히 듣는 말이라고 한다.

 

북 외교관들은 통상 10여 년을 한곳에서 근무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인권 말살로 ‘세계 왕따’가 된 본국을 옹호하고

송금까지 해야 하는 자신들 처지를 ‘전문성’으로 포장하고 있다.

 

경제·문화 대국 한국이 이 최빈국으로부터 황당한 모욕을 받아왔지만,

이 ‘전문성’ 공세만큼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임기가 제한된 자유주의 민주정부가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

장기 독재와의 체제 선전전에선 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제14차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신흥 경제 5개국) 국가 비즈니스 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건배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실제 지구촌 곳곳에선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안보·경제 전쟁에서 이기고

시장경제·민주주의 진영은 휘청이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러시아다.

 

지난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미국과 유럽이 똘똘 뭉쳐 제재를 가할 때는

정의가 곧 승리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석유·가스 부국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서방 각국의 에너지난과 물가 폭등에 따른 정권 지지율 폭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천연자원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기보다는,

잦은 선거로 정권이 심판받는 민주주의 체제의 ‘약점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는 부작용을 개의치 않는 톱다운식 경제정책 덕에 환율과 재정을 방어하고 있다.

“제재를 한 서방은 신음하고, 러시아 정권은 현금 속에서 헤엄을 친다”(월스트리트저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상은 다르다.

러시아는 갈수록 경제·사회가 곪아 들어가고 국민의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맹신적 지지층을 앞세워 독재자를 영웅시하고,

외부의 적을 발굴해 자신들의 불법과 실패를 덮고,

국민이 정권을 바꿀 수 없게 하는 ‘전문가’들이 활동하는 체제에선

어떠한 현실도 승리로 포장된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제재에도 군사·경제 팽창을 계속한 러시아

‘독재의 전염’을 일으켰다.

 

미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2021년 폴란드·체코 등 동구권 10개국 중 8국에서

자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만족도가 하락했다.

또 지난 20여 년간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체제는 감소하고,

민주주의의 허울 속에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변종 독재가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지난 십수년 한국 곳곳에 뿌리내린 친북 풍조, 자유에 대한 멸시

‘독재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란 선전전이 먹힌 결과일 수 있다.

 

선출된 정권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처참하게 무너진 요즘의 장면은

허약한 민주주의를 물어뜯는 자학처럼 보인다.

 

저 밖의 ‘전문가’들이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