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한국 정교회 초대 대주교

colorprom 2022. 7. 19. 16:35

[동서남북] 한 그리스인 사제의 47년 한국 사랑

 

입력 2022.07.19 03:00
 
 
2011년 10월 경기도 가평 구세주 변모 수도원에서 만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한국 정교회 초대 대주교.
지난 6월 한국 땅에서 안식에 들었다. /이태훈 기자

 

“사진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지난달 13일 오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실.

11년 전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초대 대주교를 뵈었을 때 통화한 번호였다.

“신문에 실렸던 사진을 추도식 초청장에 썼으면 해서요.”

 

경기도 가평의 구세주 변모 수도원으로 꼭 다시 찾아뵙겠다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됐다.

1975년 한국으로 건너온 뒤 47년간 한국과 한국인을 돌보며 살았던 분.

트람바스 대주교는 지난달 10일 93세로 한국 땅에서 눈을 감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성직자 의복을 입은 관 속의 그에겐

예배 때 두르는 영대(領帶)와 주교 목걸이뿐이었다.

 

“그럼요. 그 때 제가 찍은 사진들, 찾는 대로 다 보내겠습니다.”

사진을 넘기며 산타클로스처럼 길고 흰 수염을 기른 대주교의 웃음을 다시 만났다.

 

처음 한국에 오기로 결심한 순간을 떠올릴 때도 그는 담담했었다.

“1975년 아테네 대주교좌성당 주임사제로 있을 때, 한국 정교인들이 보내온 편지를 봤어요.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꽃밭을 배경으로 선 한복 차림 아이들이 모두 꽃 같은데, 목자 없이 방치돼 있다니.

편지와 사진을 붙들고 밤새 울었지요.”

 

2011년 10월 경기도 가평 구세주 변모 수도원에서 만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한국 정교회 초대 대주교.
지난 6월 한국 땅에서 안식에 들었다. /이태훈 기자

 

한국 가톨릭으로 치면 명동성당 주임신부 격인 자리를 버리고

가난하고 낯선 나라 한국행을 자원했다. 그해 12월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리스의 온화한 지중해 날씨에선 상상 못 할 추위가 먼저 다가왔다.

그는 “워낙 몸이 약해서 가족은 한국행을 뜯어 말렸고,

한 친구는 ‘석 달을 못 버틸 것’이라 장담했었다”고 했다.

“건강했던 친구들보다 제가 더 오래 사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요.

제가 유달리 좋아하는 고사리와 더덕, 김치와 된장찌개의 힘일까요?”

그 뒤로도 그는 11년을 더 건강히 한국 교회와 한국인을 돌봤다.

 

그가 오기 전까지 한국 정교회는 세계 정교회에서 잊힌 존재였다.

6·25전쟁에 종군했던 그리스 신부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던 나이 든 한국인 신부 혼자

서울 아현동 성당을 근근이 지켰다.

교인은 50여 명뿐, 주일 헌금을 다 모으면 1700원 정도였다.

전기요금과 공과금 내기도 힘에 부쳤다.

한강에 다리가 세 개뿐이던 시절,

성당에는 러시아어에서 거칠게 한국말로 옮긴 전례서가 딱 세 권 있었다.

 

트람바스 대주교는 “그래도 필요한 만큼 하느님께서 꼭꼭 채워주셨다”고 했다.

거의 매일 새벽 두시까지 매달리며 교리와 전례서를 연구해

알기 쉬운 한국말로 번역해 나갔다.

부산, 인천, 전주 등에 하나씩 정교회 성당을 세웠다.

1982년 세웠던 성 니콜라스 신학교

홍콩, 필리핀 등의 정교회 사제와 신학자들을 배출한 ‘정교회 아시아 신학의 요람’이 됐다.

 

2011년 10월 경기도 가평 구세주 변모 수도원에서 만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한국 정교회 초대 대주교.
지난 6월 한국 땅에서 안식에 들었다. /이태훈 기자

 

대주교는 “한국인은 알고 보면 진짜 기쁨과 슬픔은 잘 드러내지 않는 속 깊은 사람들

이라고도 했었다.

“그리스 창문은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지만 한국 전통 창은 밖에서 안을 못 보죠.

한번은 뺨에 눈물 자국이 있는 아이가 성당에 찾아왔어요.

알고 보니 아침에 연탄가스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대요.

그런데 신부 앞에서 울지도 않고…. 지금도 그 아이 얼굴을 잊지 못해요.”

 

현재에 취하면 과거를 쉽게 잊는다.

고난은 옛일 같고, 현실은 거저 얻은 줄 착각도 한다.

한국 정교인들의 ‘영적 아버지’ 트람바스 대주교의 삶은 한국 정교회 역사가 됐다.

그 역사는 바닥에서부터 일구고 쌓아올리며 한국인이 걸어온 길과도 닮아 있다.

 

지난 4일, 정교회 전통에 따라 안식 40일 후 드리는 추도 예배 초청장이 도착했다.

입가에 고요한 웃음을 머금은 대주교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분을 만나고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건 기자로서 영광이었다.

 

추도 예배는 23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