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아베 신조

colorprom 2022. 7. 9. 15:07

[만물상] 아베 신조

 

입력 2022.07.09 03:18
 
 
참의원 지원 유세 도중 총격에 쓰러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몇 년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난 적이 있다.

도쿄 도심에 있는 총리 관저의 집무실을 방문했는데

가방만 검색기에 통과시키고 들여보냈다.

명목상 국왕 다음 서열이라고 해도, 일본 정부 수반인데 의외였다.

 

당시 아베 총리는 한국과 가까워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한국 기자를 대우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경비가 손을 저었다.

함께 간 일본 지인은 “일본의 총리 경호는 대개 이렇다”고 했다.

 

아베 전 총리는 결국 ‘혐한(嫌韓)’ 정치인이 됐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막연히 낙관하고 있었다.

2006년 그가 낸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한국 언급은 232쪽 중 한 쪽도 못 되는 아홉 줄에 불과하다.

 

“한일 관계는 낙관주의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와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은 유명한 친한 인사였고

아내는 한류 스타 박용하의 광팬이었다.

 

역사의 거리를 정치, 경제, 문화의 접근으로 메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착각이었다.

▶그에겐 한국과 관련한 몇 가지 소문이 따라다녔다.

아베 전 총리는 할머니를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를 낳고 아베 가문에서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 명문가에서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차별을 받던 한국인이란 소문이 돌았다.

아베 일가의 본거지가 한국인이 많이 오가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란 점도 작용했다.

집권 초 일본 주간지 기자들이 소문을 확인한다고 달려들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그의 우경화 이후 조용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정치를 거부한 형 대신 일본 보수 정계의 황태자로 커

사상 최연소 집권당 대표, 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68세였지만 세 번째 총리에 오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유지했다.

총리 임기 동안 무기력해진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중국과 거리를 유지하고 미·일 동맹을 복원해

세계 자유 진영의 안보 중심축으로 만들었다.

 

아베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중 괴한 총을 맞고 숨졌다.

사무라이 같은 최후였다.

가까운 나라에서 되살아난 정치 테러가 섬뜩하다.

 

그의 모든 신념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업적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그는 북한에 납치된 자국 국민을 구했고

남아있는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려고 죽을 때까지 힘썼다.

 

납치 범죄에 대해 김정일의 시인과 사과를 받아낸 정치인도 그였다.

 

일본에서도 이런 정치인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