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50] 킬리만자로의 표범
고급 펜트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두툼한 구름이 카펫처럼 깔려
아래에 있는 고층 아파트도 잘 보이지 않는 높이였다.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은 높이 올라갈수록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본다는 건 이미 게임을 반쯤 이기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전쟁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망루를 설치하는 이유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어느 곳이든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더 가파르고 험난해지기 때문이다.
급경사일수록 허리와 머리를 더 숙이고 걷지 않으면 우리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서천석은 ‘마음을 읽는 시간’에서
정상을 보며 달리는 많은 사람이
저 고지에만 오르면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추스른다고 말한다.
문제는 등정 이후에 나타난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이기 때문이다.
가파르고 비좁은 산 정상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정상 부근을 표범의 시체가 말라붙어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말로
이 단편의 도입부를 채워간다.
서천석은 삶의 ‘목표’와 ‘의미’를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삶에서 내가 이루려는 목표와 삶에서 내가 찾고 싶은 의미는 다르다는 것이다.
‘의미’는 언제나 ‘목표’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목표를 이루고 싶은 이유가 ‘의미’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끝내 물어야 한다.
왜 오르려고 하는지, 정상을 향한 이런 노력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살다 보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기쁨도, 고통도 끝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중요한 건 언젠가는 내려와야만 하는 그 길, 하강의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다음의 삶을 결정할 때가 더 많다.
유도를 배울 때도 가장 처음 배우는 기술은 낙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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