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저물어가는 ‘신의 직장’

colorprom 2022. 6. 7. 16:55

[데스크에서] 저물어가는 ‘신의 직장’

 

입력 2022.06.07 03:00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뉴스1

11년 전 처음 금융 분야를 취재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은행금융감독원·산업은행·수출입은행·예탁결제원·예금보험공사 같은

금융 공기업의 위세가 대단했다. ‘신의 직장’으로 불렸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명문대 졸업생들이 특히 선망하는 일터였다.

 

요즘은 이쪽 분야 사람들이 풀이 죽어 있다. 무엇보다 “월급이 짜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사에서

“급여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사기 진작 방안을 찾아보자”고 했을 정도다.

중앙은행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직원 급여 수준을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월급이 얼마나 오르지 않았길래 그럴까.

금감원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011년 8903만원이고, 2021년은 1억673만원이다.

10년간 20% 올랐다.

급여 수준 및 인상 폭은 한은과 다른 금융 공기업도 금감원과 엇비슷하다.

 

반면 같은 10년 동안 직원 평균 연봉이

삼성전자는 86%(7760만원→1억4400만원), 네이버는 74%(7405만원→1억2915만원) 올랐다.

 

이런 변화에 대해 ‘신의 직장’ 종사자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관 사이에서 직장 가치의 균형을 뒤늦게 찾은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직접적인 부가가치 창출과 거리가 있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민간의 간판 기업 직원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던 예전이 비정상에 가깝다.

한은이나 금융 공기업들이 ‘신의 직장’에 걸맞은 일을 해왔다고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은의 한 간부는 “신입 행원 면접장에서 빠짐없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겠다’고 해놓고

들어온 다음에는 월급이 적다고 불평한다”고 했다.

 

신의 직장’의 위상 저하는 되돌릴 수 없다.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이 여럿 등장한 민간 부문의 비중이 부쩍 커졌다.

반면 공공 분야 종사자는 대거 늘어났고, 재정은 급격히 악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처우를 개선해주려 해도 구조적으로 여력이 사라졌다.

 

현실적인 방법은 공공기관 스스로 성과에 따른 직원 간 급여 차이를 키워

고연봉자가 나올 수 있게 바꾸는 것이다.

그러려면 노조가 변해야 한다.

 

정부도 공공기관에서 민간으로 가거나 그 반대로 이직하는 기회를 늘리는 쪽으로 칸막이를 낮춰

민관 사이 이동의 역동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능력과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과실을 누릴 수 있게 하면

공공 부문 효율성도 제고될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금융 공기업 직원들이 직업 안정성도 누리고, ‘갑’의 위치에 서고, 급여도 더 많아

직장 가치가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던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다.

예전 ‘신의 직장’ 시절 손에 쥐고 있던 떡을 모두 쥔 채

민간보다 더 많은 월급까지 기대할 수 없다는 건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