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음모론 정치’

colorprom 2022. 3. 23. 13:39

[특파원 리포트] 증오 키우는 ‘음모론 정치’

 

입력 2022.03.23 03:00
 
 

“당신, 혹시 깨어있는(Woke) 것 아냐?”

 

올해 초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집회 현장에서

한 백인 남성이 필자에게 대뜸 이렇게 소리질렀다.

 

‘워크(Woke)’는 사전적으론 ‘잠에서 깨어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엔 극성 우파 지지자들 사이에서

사회·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좌경화 된 인식이나 행동을 공격하는 데 쓰인다.

 

취재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었는데도 동양인이 홀로 마스크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적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 한 마디에 근처 수십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따가운 시선을 쏟아냈다.

 

2020년 1월 6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의사당 내부 돔 아래에 있는 원형 공간 ‘로툰다’를 활보하며 깃발을 흔들고 있는 모습.
이들이 들이닥치는 과정에서 4명이 숨졌다.
경찰은 13명을 체포하고 나머지를 건물 밖으로 밀어낸 뒤
오후 5시 40분쯤에야 의회의 통제를 되찾았다. /EPA 연합뉴스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를 고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모토’는 단연 ‘워크’다.

흑인 사회 내에서 인종차별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지칭했던 은어가

트럼프 시대 들어 정적을 몰아붙이는 강력한 표현으로 거듭났다.

 

2020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뒤

좌파 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경찰 예산 삭감’,

인종차별은 백인 우월주의에 뿌리를 둔 법과 제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전복해야 한다는

‘비판적 인종 이론’ 등이 민주당 주류 내에서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받자

워크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워크를 앞세워 트럼프우파 진영의 ‘분노’를 연일 부채질하고 있다.

 

워크는 미국 내 ‘문화 내전’ 양상을 넘어 극단·파괴적 음모론으로 진화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부는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 성애자들’ 같은 음모론워크와 결합하고 있다.

‘트럼프 팬덤’은 더 공고해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는 더 커진다.

 

과거 대선에서 ‘주류 종교’인 기독교 세계관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홀리데이’로 바꿔야 한다는 좌파 일각 주장을 쟁점화해

연일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친 트럼프의 반(反)PC(정치적 올바름) 전략은

실제 미 중산층을 뭉치게 했다.

그러나 이번엔 공화당 내에서도 “너무 극단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 극단이 사회를 반쪽 내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트럼프는 정권을 되찾기 위해 극단적 음모론을 이용했지만,

한국의 현 정권은 권력을 차지한 이후에도 음모론을 기반으로 국정을 운영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권 초 문 정권이 대대적으로 문제 삼았던 ‘기무사 계엄 문건’ 등 하명 수사는

대부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직과 기능을 정권 입맛대로 바꿔 ‘권력 수사’를 봉쇄한 이후에도

“검찰 기득권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자신들 무능함을 가리려 했다.

대선 막판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주장과 관련해선

“야당 생활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대선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민주당, (음모론이라는) 본업으로 돌아왔다”는 글엔

동감한다는 댓글이 잇따라 달린다.

 

이 평가에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