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비 새지 않는 집

colorprom 2022. 3. 3. 16:31

[일사일언] 비 새지 않는 집

 

공희정·드라마 평론가
입력 2022.02.25 03:00
 
 

어린 시절 살던 집은 한옥이었다.

여름엔 장마를 대비해 기와의 이음새를 살펴야 하고,

겨울엔 스며드는 한기를 막기 위해 두꺼운 담요를 방문에 걸어 두어야 했던 집이다.

그 집에서 부모님은 결혼하셨고 내가 태어났기에

이사한 후에도 그곳을 지날 때면 기웃거리곤 했다.

 

얼마 전 그 집이 사라졌다.

담을 같이 하고 있던 오래된 한옥 몇 채도 함께 헐렸다.

봄은 오지 않았고 땅은 녹지 않았는데 공사는 분주히 진행되고 있었다.

 

건설 기술의 위력이 계절의 한계를 무색하게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부실공사 뉴스를 자주 듣다 보니 문득 ‘안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더 심했다.

 

좀 오래전 드라마지만, ‘MBC 베스트 극장-달수의 집짓기’(MBC·1995)는

‘백’ 하나 없는 평범한 시민 달수의 집짓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부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달수는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다 엉겁결에 다가구 주택을 짓게 되었다.

건축비는 건축업자가 완공 후 전세금으로 충당한다니

목돈 없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흥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

듣도 보도 못한 세상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가수(加水)’라 불리는 콘크리트에 물타기와 철근 빼먹기는 기본이었고,

공사 현장 민원을 해결한다며 드나드는 경찰, 규정 미비라며 트집 잡는 소방서 직원,

인허가 조건을 나열하는 구청 직원들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았고

해결은 ‘접대’뿐이었다.

투덜거리는 동네 주민들에게는 선물 보따리를 돌려야 했고,

대문을 마주하고 살 앞집 주인에겐 두툼한 돈봉투로 사생활 보장 협상을 끝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공되었다.

이제 고생 끝이겠지 했지만 웬걸,

원칙을 벗어나 관행에 따라 지어진 집은 첫날부터 비가 샜다.

 

조금 빨리 가기 위해 무리를 이탈해 샛길로 들어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우리는 유독 자신에게만은 관대하고 스스로를 위한 변명에는 너그럽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남들이 다 그렇게 해도 나는 그러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원칙주의.

그것이 비 새지 않는 튼튼한 집을 짓는 진정한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