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중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colorprom 2022. 2. 15. 09:34

[동서남북] 중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중국 압박·국내 여론에 따라 국익 원칙 갈팡질팡하지 말아야
표심 좇아 춤추는 외교 공약… 대중 정책도 포퓰리즘 우려

 

입력 2022.02.15 03:00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2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 출범 넉 달 전인 2017년 1월 베이징의 한 호텔방. 더불어민주당 방중단을 이끌고 온 송영길(현 당대표) 의원이 늦은 밤 몇몇 특파원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 자리에서 “사드와 북핵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송 의원은 “우리가 (정권) 잡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라는 거듭된 물음에 그는 “여하튼 우리가 하면 다 풀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두 달 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일본 외교관은 “한국에서 외교관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될 때였다. “지리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십보백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은 엄청나게 다르다”며 “한국의 대중 외교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해 5월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고, 이 정권의 대중 외교는 호텔방의 호언장담과 달리 시종 지리멸렬이었다.

지난 얘기를 꺼낸 건 차기 정부의 대중 외교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친중 저자세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던 여당 후보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국내 반중 정서가 들끓자 ‘중국 어선 격침’ 운운하며 초강경 반중으로 돌변했다. 젊은 층 반중 정서에 호응해온 제1 야당 후보는 사드 배치부터 단언했다. 중국발 후폭풍이 어떨지, 그걸 감당할 전략적 계산이 섰는지는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두 후보를 보면서 ‘대중 외교도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3연임으로 장기 독재에 본격 돌입한다. 시 주석은 경제 양극화에 인내심이 바닥난 민심을 달래며 집권 연장의 초석을 다져왔다. 지난해엔 내수 시장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국 플랫폼 기업들을 때려잡고, ‘공동 부유’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중국 대기업들은 앞다퉈 기부 선언을 하며 납작 엎드렸다. 이 과정에서 중국 사회 기풍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사회경제 모순에 대해 투표로 정권 책임을 묻는 정치적 분출구가 없는 중국 네티즌들은 중화주의에 도전하는 해외의 개인이건 기업이건 가리지 않고 ‘사이버 돌팔매’를 하고 있다. 반추도 성찰도 없는 그들의 행위는 중국 지식인들도 걱정할 지경이다.

 

반면 중국을 향해 ‘인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라’는 서구 사회의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정’을 중시하는 우리 젊은 층의 중국을 보는 시각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산업면에선 한국은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파트너로 떠올랐다. 중국은 지난해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공급망 강화를 위한 구체적 협력 내용이 긴 정상회담 발표문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던 미·일 정상회담은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생존을 위해서 한·미 공급망 동맹의 빈틈을 어떻게든 파고들려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을 상대로 한 한국의 외교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이다.

중국에서 만났던 제3국 외교관들, 특히 대중 외교에서 우리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외교관들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정권에 따라, 국내 여론에 따라, 중국의 압박에 따라 국익의 잣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원칙이 서면 중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가 가능하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그럴 힘이 있다. 대중 포퓰리즘은 해법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