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달리와 좀비
[아무튼, 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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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니 부쩍 꿈을 꿉니다. 어릴 땐 죄다 개꿈이더니, 나이도 스펙인지 요즘엔 ‘꿈은 신이 보낸 편지’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신통한’ 꿈이 적지 않습니다. 꿈에서 본 사람에게서 아주 오랜만에 소식이 오고요, 뭔가에 쫓기는 꿈을 꾸고 나면 근심거리가 생깁니다. 꿈속에서만 보는 동네도 생겼습니다. 옛 어머니들이 성경 속 요셉인 양 해몽에 집착하신 이유도 조금은 알 듯합니다.
무의식의 흐름인 꿈을 주요 테마로 삼아 예술로 구현한 이들이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등 대가가 즐비하지요. 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인데요. 이삼십 대만 해도 해골과 사막과 선혈이 낭자한 이 해괴한 그림들이 싫더니, 세상이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어서인지, 산전수전 겪으며 나이를 먹어서인지 거장들 작품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감상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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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초현실주의 미술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름다움, 이성, 질서에 대한 전통적 생각을 뒤흔들며 산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산산조각 낸 정신의 혁명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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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희대의 수퍼스타였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눈길이 가더군요.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을 비롯해 그 유명한 ‘전쟁의 얼굴’ ‘스페인’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까지…. ‘비너스의 이비인후과적 머리’ 앞에선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미(美)에 대한 편견, 금기를 깨뜨리는 달리의 기괴하고도 발랄한 풍자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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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 ‘길들여지지 않은’ 예술, 환상과 상상으로 가득한 세계를 아이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여느 명작전에서는 몸을 배배 꼬며 지루해하던 아이들이 ‘러시아의 달리’라고 하는 블라디미르 쿠시전에서는 탄성을 연발했으니까요. 이번 전시장에서도 한 꼬마가 달리의 그림 앞에서 “앗, 좀비다!” 하고 외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됐지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좀비 영화 계보를 초현실주의에서 찾는 이도 있으니 아이의 안목이 영 틀리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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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뉴스레터엔 여덟 정권을 거치며 서울시장 2번, 총리 2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고건 전 총리의 11년 전 인터뷰를 배달합니다. 오늘 1면에 게재한 김황식 전 총리만큼이나 존경받은 공직의 표상이었지요. 헬무트 슈미트 총리를 ‘독일의 현자’라 부르듯, 대한민국의 현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원로들 고언에 귀 기울여보는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QR코드와 인터넷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통해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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