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달리와 좀비

colorprom 2022. 2. 13. 17:09

[아무튼, 주말] 달리와 좀비

 

[아무튼, 줌마]

입력 2022.02.12 03:00
 

나이 드니 부쩍 꿈을 꿉니다. 어릴 땐 죄다 개꿈이더니, 나이도 스펙인지 요즘엔 ‘꿈은 신이 보낸 편지’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신통한’ 꿈이 적지 않습니다. 꿈에서 본 사람에게서 아주 오랜만에 소식이 오고요, 뭔가에 쫓기는 꿈을 꾸고 나면 근심거리가 생깁니다. 꿈속에서만 보는 동네도 생겼습니다. 옛 어머니들이 성경 속 요셉인 양 해몽에 집착하신 이유도 조금은 알 듯합니다.

무의식의 흐름인 꿈을 주요 테마로 삼아 예술로 구현한 이들이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등 대가가 즐비하지요. 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인데요. 이삼십 대만 해도 해골과 사막과 선혈이 낭자한 이 해괴한 그림들이 싫더니, 세상이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어서인지, 산전수전 겪으며 나이를 먹어서인지 거장들 작품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감상하게 되더군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에 전시된 살바도르 달리의 '전쟁의 얼굴'

실제로 초현실주의 미술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름다움, 이성, 질서에 대한 전통적 생각을 뒤흔들며 산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산산조각 낸 정신의 혁명이었지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에 전시된 살바도르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역시 희대의 수퍼스타였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눈길이 가더군요.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을 비롯해 그 유명한 ‘전쟁의 얼굴’ ‘스페인’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까지…. ‘비너스의 이비인후과적 머리’ 앞에선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미(美)에 대한 편견, 금기를 깨뜨리는 달리의 기괴하고도 발랄한 풍자 때문에요.

 
'러시아의 달리'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쿠쉬의 '바람'.

그러고 보니 이 ‘길들여지지 않은’ 예술, 환상과 상상으로 가득한 세계를 아이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여느 명작전에서는 몸을 배배 꼬며 지루해하던 아이들이 ‘러시아의 달리’라고 하는 블라디미르 쿠시전에서는 탄성을 연발했으니까요. 이번 전시장에서도 한 꼬마가 달리의 그림 앞에서 “앗, 좀비다!” 하고 외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됐지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좀비 영화 계보를 초현실주의에서 찾는 이도 있으니 아이의 안목이 영 틀리진 않습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엔 여덟 정권을 거치며 서울시장 2번, 총리 2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고건 전 총리의 11년 전 인터뷰를 배달합니다. 오늘 1면에 게재한 김황식 전 총리만큼이나 존경받은 공직의 표상이었지요. 헬무트 슈미트 총리를 ‘독일의 현자’라 부르듯, 대한민국의 현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원로들 고언에 귀 기울여보는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QR코드와 인터넷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통해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