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절박함이 자만을 이긴다
# 지난 주말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를 했다. 코로나에도 아랑곳 않고 서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가를 오가다 신간 코너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매대에 넓게 깔린 한 책에 손이 갔다. “왜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는가?”라는 자극적 문구가 띠지에 붙은 책이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국제정치학과 부교수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클라스가 쓴 ‘권력의 심리학’이었는데, 서서 훑어보다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왜 우리는 끔찍하고, 무능하고, 심지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둘까?” 순간 섬뜩했다. 마치 읽어서는 안 될 금서를 읽다 들킨 듯한 심정으로 슬며시 책을 다시 매대에 내려놨다. 솔직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생각에 굳이 그것을 책에서까지 재확인하면서 읽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1940년 런던 공습 당시의 처칠을 다룬 7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폭격기의 달이 뜨면’을 집어 들고 서점을 나왔다. 하지만 서점을 빠져나오면서도 여전히 “왜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는가?”라는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손으로 또다시 괴물을 뽑게 되는 건 아닐까? 현실 속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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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서점)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이번엔 광화문 광장 한편에서 거친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당신은 3개월마다 접종 후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까?” 애써 귀를 닫고 그 시위 현장을 지나쳐 가며, 누군가 나눠주는 전단도 뿌리친 채 미 대사관 방향으로 가다가 나도 모르게 돌아섰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그 전단을 나눠주던 이에게 이번엔 내가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나 역시 3개월마다 접종 후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받아 든 전단에는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 명의로 ‘백신 접종 후 10대 청소년 6명 사망!’이란 타이틀과 ‘백신 강제 접종 반대!’라는 구호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나는 3차 접종까지 끝냈지만 세 번째 백신 접종 후에는 다소 부작용을 경험했던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은 10대 청소년들이 백신 맞고 애꿎게 변을 당했다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정말이지 복장 터질 노릇 아니겠는가. 그 전단을 자세히 훑어보니 질병관리청 올해 2월 통계에서 뽑았다며 적어놓은 코로나 백신 피해자 중 사망자가 1766명이었고, 중증 이상이 1만3164명이었으며 부작용을 경험한 전체 인원은 43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물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수치지만 가볍게 넘기거나 무시해버릴 수 있는 내용 또한 결코 아니었다.
# 방역 패스도 문제다. 사실 방역 패스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역설적으로 식음료점 등 영업장을 4인 혹은 6인으로 제한할 이유도, 영업시간을 밤 9시다, 10시다 하며 제약할 까닭도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방역 패스를 적용받은 업장 안에서는 몽땅 풀어야 맞는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4인이다, 6인이다 숫자 놀음 해가며 9시다, 10시다 하며 마치 실제 무슨 구분의 확실한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선 긋기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애꿎은 자영업자들은 정작 코로나가 아니라 그 숫자 놀음과 선 긋기에 죄다 녹아나고,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않은가. 그것을 이제 와서 100만원 아니라 1000만원씩 보상한다 한들 죽은 자식 매만지는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게다가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미어터지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방역 패스는커녕 그 흔한 체온계조차 통과 안 하지 않는가. 이 와중에 코로나 특히 오미크론 변이는 그 확산세가 이미 정부의 방역 한계치를 넘어서 사실상 K방역의 지침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의 각자도생 방식이 돼 버린 것 아닌가. 이달 말이면 일일 확진자가 17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질병관리청의 공식 발언까지 나오는 판이니 이제는 K방역이란 기만적인 괴물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정직하게 집단면역으로 이행하자고 하는 것이 차라리 맞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런 확진자 증가 추세로 정작 내달 4, 5일 사전 투표일과 9일 대선일 전후에도 일일 확진자가 20만명 이상인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자가 격리로 투표장에 나가지 못할 사람이 얼추 140만명에서 200만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칫 남발된 자가 격리로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제한이 가해진다면 이거야말로 괴물 정부의 괴선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 지난 주말 서점을 나오며 집어 든 ‘폭격기의 달이 뜨면’을 읽다 보니, 처칠이 2차 대전 중인 1940년 5월 10일 총리가 된 후 그해 말까지 나치의 런던 공습으로 영국 국민 1만3596명이 사망하고 1만8378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칠은 나치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영국 국민들을 공포 속에 매몰되게 하지도 않았다. 되레 처칠은 꼭 81년 전인 1941년 2월 9일 저녁에 방송 연설에서 나치가 떨어뜨린 폭탄의 3배, 4배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하며 영국 국민들을 죽음과 공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 연설을 듣고 난 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보다 나은 총리를 보유할 수는 없다”고! 우리는 과연 앞으로 코로나를 극복한 후 그가 누구이든 “이보다 나은 대통령을 보유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분명하게 명심할 것이 있다. 우선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지 않도록 지금의 공포를 이겨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 정녕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숫자에 자만하지 말고 절박함으로 승부해야 한다. 끝까지 절실하고 절박하게 대한민국을 이 수렁에서 건지려고 몸부림치는 자가 결국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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