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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간첩 정경학 사건

colorprom 2021. 12. 27. 19:17

“목숨 걸고 간첩 정경학 체포 도왔는데...” 10년째 법원과 싸우는 남자

 

입력 2021.12.27 15:09 | 수정 2021.12.27 18:06
 
 
직파 간첩 정경학(오른쪽)과 필리핀에서 사진을 찍은 A씨. /조선DB

북한에서 직파(直派)한 간첩 정경학(63)은 2006년 7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잠입했다가

서울 성북구 한 호텔에 잠복해 있던 국가정보원 요원들에게 검거됐다.

김일성종합대학·김정일정치군사대학 출신인 ‘엘리트’이자,

노무현 정권이 적발한 첫 ‘직파 간첩’이라 화제가 됐다.

이후 정경학에겐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징역 10년이 선고됐고,

국정원 요원 4명은 포상금 7000만원과 각종 훈장을 받은 뒤 1계급 특진을 했다.

 

당시 국정원이 정경학을 검거하는 데에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했던 민간인 A(64)씨의 역할이 컸다.

A씨는 “국정원의 부탁으로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내가 정경학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이는 국정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국정원 로고./이덕훈 기자

A씨는 2005년 한 공기업을 퇴직한 뒤 필리핀 이민을 준비 중이었던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이었다.

그는 우연히 필리핀 현지 사업가로 신분을 위장한 정경학 등과 이메일 등으로 접촉하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정원은 A씨에게 “정경학을 국내로 데려와 달라”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고,

A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A씨는 2006년 1월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출국해 정경학을 만났다.

필리핀에서 약 4개월 동안 친분을 쌓은 A씨는 정경학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국정원 요원들에게 그를 넘겼다.

그런데 A씨에게 돌아온 건 ‘국정원장 표창’과 상금 20만원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청와대에 항의 편지를 써 뒤늦게 받은 것이다.

 

이를 부당하다 여긴 A씨는 2009년 8월 국가를 상대로 한

북한직파간첩검거유공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안 된다’는

국정원법 11조(직권남용의 금지·현 13조)를 위반해

민간인을 이용한 ‘부당 이득’을 얻었으니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약 43억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정경학 검거의 핵심 공로는

정경학을 필리핀에서 국내로 ‘유인’한 본인에게 있는데도,

국정원이 국내에서 ‘체포’한 점을 앞세워 부당하게 이득을 가로챘다는 게

A씨 주장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는 2011년 11월 A씨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고

A씨가 자율적 판단에 따라 국정원 수사 업무에 협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정원이 직권을 남용해 A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간첩을 검거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안보 이익은

무형적·추상적 이익으로서 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A씨는 꾸준하게 재심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A씨가 문제를 삼고 있는 건 2011년 선고된 1심 판결이다.

당시 재판장은 지난 8월 ‘우산 의전’ 논란이 있었던 현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다.

 

A씨는 “직파 간첩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국민을 피신 시키기는커녕

국정원은 ‘정경학을 국내로 유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민간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분명한데도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며

“또 재판부는 안보 이익 환산에 대한 판단 자체를 회피하는 오판(誤判)을 내렸다”

주장했다.

 

A씨는 1심 판결문에서 기초적인 사실 관계를 오인한 부분이 22가지 발견됐다고도 했다.

그는 “강 차관 등 당시 재판부는 원고에게 사과하고,

헌법과 양심에 따라 선고 결과를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미성년자 아동·청소년의 부모 빚 대물림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 부처 협력 법률지원 체계 마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A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서울고법에 2011년 1심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으며,

지난 4월부터 이달 15일까지 1심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 9건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A씨는 “이미 한 번 국정원에 이용되고 버려졌는데 법원에 의해 두 번 버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정경학은 2016년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경상남도에 주거지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경학은 2007년 2월 A씨 주소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A씨정경학이 우리 가족을 찾아오지는 않을지 항상 불안 속에 살고 있다”며

국정원에선 낯선 요원 2명이 2009년쯤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지 말라’고 찾아온 게 전부다.

이후 국가로부터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