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06] TK 사부(師傅)
입력 2021.07.19 00:00
무협지를 읽으면서 가슴에 남았던 단어는 ‘내공’과 ‘사부’다.
내공을 쌓으려면 사부를 만나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근래에 TK 식자층이 밥자리·술자리에서 ‘사부’라고 이야기하는 인물이 있다.
유목기(柳穆基·88) 선생이다.
대학에 있었던 학자도 아니고,
풍산그룹 부회장을 지낸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
일화.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 부시가 퇴임 후에 안동 하회마을에 올 일이 있었다.
풍산그룹 유진 회장이 평소 교분이 있는 부시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의전을 상의하고자 당시 경북 도지사 비서실장이 부회장인 유목기의 의견을 구했다.
“부시가 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도지사가 악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학교니까 제일 먼저 교장이 악수를 해야지요.”
“그러면 도지사가 두 번째로 하게 해 주세요.”
“아니지. 안동 교육장이 하는 게 맞지요.”
“그렇다면 병산 서원에 갔을 때 1번으로 하게 해주세요.”
“서원이니까 병산 서원장이 제일 먼저 해야지요.”
“2번으로 하면 어떨까요.”
“2번은 서애 종손이 해야죠.”
이렇게 말한 다음 이어서 비서실장에게
“무조건 도지사를 앞세운다고 상관을 모시는 게 아니에요.
도지사가 학교를 오는 것은 개인 자격 아닙니까.
정 말하기 곤란하면 내가 직접 도지사에게 전화할게요”라고.
또 하나의 일화.
10여 년 전쯤 회사가 어려울 때 노조가 파업하였다.
협상이 결렬되고 노조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서울 연희동의 부회장 아파트에 찾아왔다.
부회장 사는 것을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하였다.
평수도 작고 가재도구도 특별한 게 없어서 노조가 놀랐다고 한다.
다음 날 “나는 오늘부터 월급 안 받겠다. 식구도 할멈하고 둘뿐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 결심을 듣고 회사 사장단이 “저희도 안 받겠습니다” 하자
“나는 자식들 학교 마쳤지만, 당신들은 자식 학교 다니는 중이니까 받아라” 했다.
이렇게 사장단이 월급을 반절만 받는 것으로 결정 났다.
몇 년 뒤에 회사가 정상화되었을 때 유목기가 한마디 하였다.
“사장단이 그동안 반절 못 받은 것 소급해서 지급해 줘라. 나는 안 받겠다.”
고령인 유목기는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다.
그때 소문내지 않고 자기 퇴직금 몇 억 원을 노조에 슬쩍 주었다.
노조원 애들 학자금 보태라고.
영남의 선비 이용태(88)는 유목기의 호기(號記)에 이렇게 썼다.
‘안동 땅 온 鄕中(향중)이 깊이깊이 君(군)을 믿어,
일 있으면 상의하고 걱정 때도 찾아온다.’
'이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니스 노블 교수 (한국 山寺로 떠난 英 생물학 권위자) (0) | 2021.07.24 |
---|---|
정연주 전 KBS사장 (0) | 2021.07.21 |
장준희 부장검사 ('김학의 불법출금' 공익신고인) (0) | 2021.07.19 |
박경리 (0) | 2021.07.17 |
문흥식(61) 5·18구속부상자회 회장_광주 버스 참사 (0) | 2021.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