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통영의 박경리
입력 2021.07.17 03:00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업입니다.
작은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을 사랑하세요.
슬픔을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견디어야 합니다.”
며칠 전 통영에 있었습니다.
통영 태생 소설가 박경리(1926~2008) 기념관에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생전 작가가 남긴 이 말이 적혀 있더군요.
“슬픔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 산문집 ‘긴 호흡’ 중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던 올리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었을 때 나는 슬픔에 매료되었다. 슬픔이 흥미로워 보였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에너지 같았다.
늙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제 나이가 든 나는 슬픔이 싫다.
나는 슬픔이 자체의 에너지 없이 내 에너지를 은밀히 사용한다는 걸 안다.”
슬픔의 힘으로 응어리 토해내듯 쓰는 작가가 있고,
자기 연민을 아끼는 단단함으로 노래하는 작가도 있죠.
취향에 따른 선호는 있겠지만 우리가 두 부류의 글 모두에 감응할 수 있는 건
인간이란 양가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경리 소설 ‘파시(波市)’에
“존엄성은 자기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걸
기념관 설명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오래전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기념관 나와 들른 서점에서 구매하려 했지만 재고가 없더군요.
대신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샀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이 구절에 눈이 멎었습니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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