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12년 집권 네타냐후 일단 물러났지만… 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랍 전쟁서 부상, 형은 戰死한 ‘강력한 리더십’ 보수우파 영웅
이란核·정착촌 등 공세적 대응… 종교 갈등·우파 균열에 물러나
‘反네타냐후’ 새 연정, 美와 마찰 땐 네타냐후 다시 등장할 수도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입력 2021.06.21 03:00
12년 집권 네타냐후<이스라엘 보수우파 거두> 일단 퇴장,
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거물이 퇴장했다.
12년 2개월여의 이스라엘 네타냐후 집권 체제가 6월 13일로 막을 내렸다.
4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권력의 화신이라 불렸지만 이번 고비는 넘지 못했다.
1996년 첫 총리 재임 3년을 더하면 15년 넘게 집권한 셈이다.
건국 이후 최장 기록이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서는 장기 집권이 다반사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례적이다.
여야 교체가 빈번한 다당제 의원내각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24차례 총선에서 한 번도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정당은 없었다.
모두 연립정부였다.
이스라엘 보수 우파 대변 ‘애국 서사' 주인공
네타냐후는 정치적 수완도 보통이 아니지만,
이례적 장기 집권 배경에는 개인 이력이 있다.
후일 코넬대 교수를 역임한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네타냐후는
MIT 출신이다.
고교 졸업 직후 병역을 위해 이스라엘로 귀국, 대테러 정보부대에서 근무했다.
아랍과의 교전이 빈발하던 시기로 어깨 총상을 비롯, 여러 차례 부상을 당했다.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참전했다.
그의 형 요나단은 엔테베 작전 당시 인질 구출에 성공하고 유일하게 희생된
이스라엘 장교였다.
확신에 찬 이념과 일관성, 유려한 영어와 국제 감각,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친분,
참전과 부상 그리고 형의 죽음이 구성하는 애국적 서사는
이스라엘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네타냐후의 정치적 자산이다.
국제 정세도 네타냐후 장기 집권에 한몫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의 혼란과 숙적 이란의 부상 국면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은 평화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에서 네타냐후의 단호한 외교 행보는
이스라엘 우파 유권자들을 만족시켰다.
특히 정착촌, 이란 핵문제 등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껄끄러울 때에도
거침없이 마주하며 할 말 하던 모습은 보수 우파를 안심시켰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공세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도 보수층의 지지를 견고하게 했다.
보수 우파 균열로 선거 이기고도 연정엔 실패
그렇다면 왜 물러났을까? 선거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네타냐후는 지난 3월 24일 선거에서 승리했다. 30석을 얻은 제1당 리쿠드당 당수다.
17석을 얻은 제2당 예시 아티드와의 격차가 컸다.
여전히 이스라엘 의회의 정치 지형은 66석 대 54석으로 보수 우파 우위다.
네타냐후의 퇴진은 선거에 이기고도 연정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보수 우파의 균열 때문이다.
균열의 원인은 다양하다.
[1]먼저 권력 경쟁 때문이었다.
권력을 노려온 보수 유력 인사들은
네타냐후 장기 집권 체제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네타냐후 리더십은 강고했다. 결국 하나둘씩 이탈했다.
이번 연정에 참여하여 네타냐후를 실각시킨 나프탈리 베네트 신임 총리는
네타냐후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기드온 사르와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등 베네트 총리와 함께 연정에 참여한
보수 정파 대표들 역시 과거 네타냐후의 측근이었다.
[2]한편 보수 진영 내 세속주의와 종교 정파 간 갈등도 균열을 촉발했다.
네타냐후가 종교인 편을 들면서 세속주의 우파 일부가 이탈했다.
이번 연정 구성 이후 리쿠드당과 함께 친네타냐후 진영에 남은 야당 세력 3개 정파는
모두 초정통파 유대교 성향이다.
따라서 이번 연립정부는 이념이 아닌 네타냐후에 관한 찬반으로 갈린 셈이다.
네타냐후를 실각시키고 결성된 신정부는
극우부터 아랍계 인사까지 정치 이념을 망라하고 있다.
베네트 총리와 야이르 라피드 외교 장관이 이끌게 될 연립정부의 미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2년씩 총리-외교장관 직을 교대하기로 한 두 연정 지도자의 성향이 사뭇 다르다.
베네트는 네타냐후를 넘어서는 강경파 인사로 유명하다.
반면 정부 내 최대 지분을 가진 라피드 장관은 중도에 가깝다.
신정부에는 사상 최초로 아랍계 정당이 참여하는 등
연립정부 내 정당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정부 참여 8개 정파 중 6개가 중도 좌파에 가깝기에
향후 보수 우파의 이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일단 반네타냐후 기치로 모였지만 성향과 입장 차이가 언제 불거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 오면
보수 우파의 결집 요구가 커질 것이다.
그때 과연 지금 베네트 총리가 보수 진영을 대표하며 전위에 설 수 있을까?
네타냐후를 갈음할 수 있을까?
앞으로 2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달렸다.
특히 대미 관계가 관건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정책 및 중동 전략이 이스라엘과 마찰을 빚게 될 경우
네타냐후 같은 노련함을 기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상황 변화에 따라 현 연정에 참여한 보수 정파는
언제든 다시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과 손을 잡을 수 있다.
새 연정 흔들릴 땐 재등장 빨라질 수도
국제사회에서 네타냐후는 악당 이미지로 유명하다.
오슬로 평화협상을 이끌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 같은 존경과 찬사를 받지 못한다.
정착촌을 확대하며 팔레스타인을 억압해 온 그를 아랍은 증오한다.
강경한 대외 정책은 선명하고 유능했을지 모르나 부작용이 많았다.
여기에 국내 정치의 부패 스캔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보수파를 아우르지 못했고 마침내 실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보수 유권자들은
안보 위협을 겪는 국가의 지도자가 보여주어야 할 덕목들을 그의 이력에서 본다.
전역 후 참전을 위해 바로 이스라엘로 돌아왔던 청년 장교의 이미지,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섰던 형을 잃은 비극의 스토리는
적을 사방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서사다.
초지일관하는 그의 이념과 정책 기조, 결기 있고 능수능란한 외교 역시
현 이스라엘 어느 정치인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베네트 현 총리의 정치적 경륜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 정치가 그를 다시 소환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단, 부패와 독직 혐의를 어떻게든 털어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의 이름 베냐민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다.
우파의 아들 네타냐후는 아직 퇴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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