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주영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colorprom 2021. 6. 7. 16:12

“백신 개발 약한 K방역… 의사과학자 300명 키워 제약바이오 강국 만들자”

 

[이영완이 만난 사람]

“의대생 1%를 의사과학자로 키우자” 주영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06.07 03:00

 

 

 

 

주영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의사과학자들은 코로나 전쟁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이끌었다”며 “우리도 매년 의대 졸업자 1%를 10년간 의사과학자로 키우면 세계 의료산업을 이끌 과학 전사 300명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학과 연구소마저 실험동물을 안락사시키고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런 최악의 환경에서도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 없는 속도로 백신을 개발했다. 이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상이 회복되면서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 과학계는 치료제와 백신은커녕 변변한 코로나 연구 논문도 발표하지 못했다. 연구·개발(R&D) 투자는 절대 규모로 세계 5위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코로나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주영석(39) 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의 협조로 이룩한 K방역은 희생자를 줄였지만 치료제나 백신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수비는 강력했지만 공격은 할 줄 모르는 이상한 축구팀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려면 감독과 배우뿐 아니라 조명과 소품을 맡은 사람처럼 다양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도 그동안 경험이 축적된 인력 덕분이겠죠. 신약과 백신 개발도 다양한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자체 개발한 경험이 없으니 인력이 양성될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 30대 제약사에 한국 회사가 한 곳이라도 있나요.”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 주도한 의사과학자들

-코로나 대유행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반복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가장 부족한 인력이 바로 의사과학자이다. 의사이지만 환자 진료보다 연구·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다. 의대 교수들도 연구 활동을 병행하지만 환자 진료가 먼저여서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어렵다. 의사과학자 또는 과학자의사는 거의 모든 시간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의사를 말한다. 축구로 치면 공수 양면에 능한 미드필더와 같다.”

-의사과학자들이 이번 코로나 대유행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서 모두 의사과학자가 주역이었다. 지난해 12월 독일 바이온텍은 미국 화이자와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승인받았다. 이 회사는 터키 이민 가정 출신의 의사과학자인 우우르 샤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가 세웠다. 이들은 실험실 가운을 걸치고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실험실로 달려갔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한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치료제도 의사 출신 기업이 만들었다고 들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코로나 치료제로 처음 승인한 렘데시비르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가 과거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했던 약이다. 1987년 29세의 의사 마이클 리오던은 모기에 물려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길리어드를 세워 세계 10대 제약사로 성장시켰다. 환자를 잘 아는 사람이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베트남전 ‘옐로베레’, 美 제약산업 발전 이끌어

-의대에서도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대신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과거에는 의대 졸업자 중에서 기초의학교실로 가는 사람들이 적지만 꾸준히 나왔다. 또 의사 출신이 부족하면 자연대에서 기초과학을 전공한 과학자들로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의대 졸업자 중 기초의학교실로 가는 비율이 1%가 채 되지 않아 기초의학의 붕괴 위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달 21일 주영석 교수가 교원 창업한 지놈인사이트의 서울 서초동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을 위해 냉동 중인 세포 시료를 꺼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왜 의대의 기초의학이 무너졌는가.

“기초의학교실은 의대생 교육이 목적이지 연구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 병원에서 미국이 18개를 차지해 1위였고, 우리나라는 7개로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일본과 공동 2위였다. 임상에서는 암 치료의 최신 내용을 말하는데 기초의학은 과거 지식만 가르친다.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

-그렇다면 기초의학교실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하나.

“나는 의사과학자를 늘리면 의대의 기초의학도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미국 10대 제약사 최고기술책임자(CTO)의 70%가 의사과학자이다. 하버드대와 MIT가 있는 보스턴에서 명의(名醫)는 환자 진료를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신약 개발하고 벤처 만들어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말한다. 의사가 연구를 해도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은 어떻게 의사과학자를 양성했나.

“미국이 제약 산업에서 세계 1위가 된 것은 NIH가 6·25전쟁에서부터 베트남전쟁까지 징집된 의대생 중 매년 100명 이상에게 전투 대신 연구할 기회를 준 것이 시발점이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한 그린베레(미육군 특수부대)와 대비해 ‘옐로베레’라고 불린 이들은 NIH의 기초연구가 임상 연구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미국 생명과학계의 리더가 됐다. 지금도 7~8년의 NIH 의사과학자 복합학위과정에 선발되면 전액 장학금을 주는데 의대생의 최고 영예로 인식된다.”

 

진료는 평생 10만 명 보지만 연구하면 수억 명 살려

-우리도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국내에도 NIH의 옐로베레처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이나 서울대 의대, 연대 의대에 병역 특례를 주는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이 있다.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수능 최고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의대로 몰린 지 10년이 넘었다. 의대생들이 새로운 길을 생각할 때가 됐다. 최근 국내에서 의사 출신이 설립한 인공지능 진단 업체, 유전자 분석 업체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의대생들이 연구와 창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의사들을 가르쳐보니 미래가 보이던가.

“그동안 인턴, 레지던트를 마친 의사들이 들어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많이 냈다.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상황이 됐다. 학교, 학문 간 경계가 허물어진 환경에서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결과였다. 우리 연구실도 허파 세포로 미니 허파를 만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과정을 밝힌 논문을 ‘셀’ 자매지에 냈다.”

-의사과학자들은 어느 정도 필요한가.

“우리나라 의대 졸업생 1%가 의사과학자가 되면 연간 30명씩 10년에 300명의 의사과학자를 기를 수 있다. 미국처럼 의사의 3%가 의사과학자가 되면 그 시간이 3분의 1로 기간이 줄 것이다. 이들이 다음 코로나를 극복하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을 도약시킬 수 있다.”

-영화 ’300′이 연상된다. 그렇게 적은 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의사가 매일 환자를 봐도 평생 10만명밖에 볼 수 없지만 연구로 질병 원리를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아낸다면 수억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들 한다. 항생제를 개발한 영국의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이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노벨상을 받은 게 좋은 예다. 지난해 네이처지는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이 세계 9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의사과학자들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면 엄청난 성과가 나올 수 있다.”

대학, 학문 간 벽 허물고 해외 진출도 지원해야

-어떻게 하면 뛰어난 의사과학자를 키울 수 있나.

“무엇보다 벽을 허물어야 한다. 의대 졸업생이 모교가 아닌 대학에서 수련의나 전공의를 하면 다들 이상하게 본다. 의대 교육이 도제식으로 이뤄져 인력이 섞이지 못하는 환경이다. 의사과학자는 그와 달리 의대를 나와 자연대, 공대로 자유롭게 가야 한다. 한쪽에 가둬 놓지 않고 경계를 넘도록 해야 한다. RNA를 배우고 싶은 의사가 있으면 생명과학과로 가고, 인공지능(AI) 진단을 연구하고 싶으면 컴퓨터공학 연구실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까.

“의사과학자가 국내 다른 대학은 물론 해외로도 나가 공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인력 유출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고 문제 삼는 사람들은 없지 않은가. 유럽분자생물학회(EMBO)는 1년에 1억원을 젊은 과학자에게 지원하는데 조건이 다른 나라로 가 연구를 하거나 주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의사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연구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초기 연구비나 대학원 인건비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의사과학자들이 계속 늘어나면 현재 전자나 자동차 산업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영석

서울대 의대를 나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대신 질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마크로젠 생명과학연구소 연구원과 영국 웰컴 생어 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2015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새로 발견해 네이처, 네이처 유전학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며, 2020년 아산의학상 젊은의학자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젊은과학자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