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 나라에 毒일까 藥일까
회고록 전체가 의혹 합리화, 위선마저 궤변으로 감싸
與 주자들 조빠 눈치보며 민심 걱정하는 당과 엇박자
자신만 생각하는 曺 행태가 정국엔 어떤 영향 주게 될지
입력 2021.06.03 00:06
조국 전 법무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읽는 내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는 ‘나르시스’를 떠올렸다.
책 서문의 절반이 자신을 응원해준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건물 승강기에서 “힘내세요”라고 안쓰러워한 시민들,
누군지 알아보고 요금을 받지 않은 택시기사,
밥을 먹고 나오는데 주차장까지 따라와 편육과 김밥을 차 안에 넣어 준 식당 주인,
포장 주문을 찾으러 갔더니 “몇 개 더 넣었습니다”라며 봉투를 건넨 빵집 할머니… .
가슴 찡한 사례가 수십 건 열거돼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의혹을 검찰, 언론, 야당 카르텔의 창작품이라고 했다.
“보수 카르텔이 마음만 먹으면 그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우선순위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조국 자신은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든 괘씸죄 때문에
우선순위 맨 앞자리로 끌려나온 희생양이라는 주장이다.
잘못을 인정한 대목도 있다.
‘과거 진보적 학자로서 했던 말과 실제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방점은 ‘완벽히’라는 단어에 찍혀 있다.
99%는 언행 일치했지만 1% 그러지 못한 대목도 있었다는 거다.
차고 넘치는 내로남불과 위선만은 철벽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서전 '조국의 시간'이 출간된 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익문고에서 책이 판매되고 있다/뉴시스
그렇다고 조국이 죗값을 온전히 치를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감싸준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양형 감경 사유를 찾아냈다.
“역설적이지만 위선이야말로 선을 닮고 싶은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증거한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위선에 대해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라고 한 수 접어주는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다.
위선도 조국과 한 몸으로 묶인 덕분에 팔자를 고쳤다.
조국은 자신의 희생 제물 이미지를 반사해 줄 거울이 필요했다.
조국은 주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똑 같은 일을 겪고 있다”고 위로했다고 한다.
조국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되기를 희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회고록 속에 담았다.
‘공소권 없음’은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수사가 중단되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그렇게 종결됐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에 책 서문을 쓰게 돼서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마치 우연히 날짜가 겹쳤다는 투다.
자신의 처지가 노무현과 닮은 꼴이라는 연상 작용을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시킨다.
노무현이라는 거울 하나로 성이 차지 않았던 걸까.
회고록에는 천주교 신앙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18세기 실학자 정약전이 등장한다.
“나는 정약전의 처지가 됐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갔을 때 왜 물고기만 연구하며 자산어보를 썼는지 이해가 간다”
고 했다.
정약전을 소재로 한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됐을 때 아들과 보러갔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자 아들은 “우리 집 이야기 같네요”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영화관을 나왔다는 것이다.
21세기 내로남불 거사의 동병상련 파트너로 소환된 정약전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조국은 회고록을 “전국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 규모가 수백만명이라고 했는데 여권 사람들 들으라는 무력시위다.
그 효과는 당내 경선 사정이 다급한 대선 주자들 반응에서 곧장 확인된다.
이낙연 전 총리는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고,
정세균 전 총리는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본선 민심을 더 신경 써야 하는 당 사정은 다르다.
송영길 당 대표는 허겁지겁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혀야 했다.
여당 사람들은 사석에서
“야당에서 이준석 돌풍이 부는 최악의 시점에서 조국 회고록이 나왔다”고 속을 끓인다.
문 정권이 ‘조국의 시간’이라는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교보문고 판매대에 놓인 회고록이 모두 팔려 카운터에 비치된 견본을 들고 왔다.
조국은 판매 하루 만에 10만부가 팔렸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
정가 1만7000원의 10% 인지대만 받아도 벌써 1억7000만원 수익을 확보했다.
조빠들이 회고록 판매 부수로 그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몇 권씩 구매하며
인증샷을 올린다고 한다.
앞으로 20만, 30만부 고지를 넘을 때마다
조국의 나르시시즘은 어김없이 소셜 미디어를 타게 될 것이다.
선한 의도가 좋은 열매를 담보하지 못하듯,
좋은 열매가 반드시 선한 의도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다.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이
나라 전체로는 독(毒)이 될지, 약(藥)이 될지 궁금해진다.
♠한 권력자의 회고록… 그의 글은 비열함의 나열이다
[논객 조은산의 시선]
진인 조은산·국민청원 '시무 7조' 필자
입력 2021.06.04 03:00
사람과 사람 간에는 인연(因緣)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함께 몸담으면서도 혹은 적의를 갖춘 채 서로를 힐난하면서도 인연에 대해 말한다.
우연과 악연 그리고 필연에 대해 말한다.
모두 인연의 다른 이름들이다.
사람과 사람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맺어지고 얽혀가며 살아가는 존재다.
연(緣)으로 맺어지는 게 어디 사람과 사람뿐일까.
글과 글 주인도 그렇다.
그들도 연으로 맺어지는 관계다.
나는 글이라는 게 단순히 글쓴이의 전적인 산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글이 그 사람과 연이 닿아 만난 것이다.
연이 닿지 않았다면 그 글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태어날 수도 있다.
태초의 영혼을 간직한 채 더 유려하고 고귀한 글이 되기도 한다.
마치 헤어진 전 애인이 새로운 사랑을 하게 돼,
더 아름다워지거나 더 멋있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글이 글 주인의 손을 기다리며 무의 공간에서 유의 공간을 찾아 헤맨다.
내게도 그렇게 다가온 글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 글을 거뒀을 뿐이다.
온 힘을 다해 껴안아 내게 전해주는 말들을 들었을 뿐이다.
그 연으로 나는 그 글의 주인이 되었다.
영광은 없다. 더 많은 글,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고통만이 남았다.
그러나 기쁨은 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정성으로 읽힌다는 기쁨이다.
이 글은 그 고마운 마음으로 내게 다가선다.
다시 꼭 껴안아 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연을 찾아 지천을 떠도는 그 많은 것들이 거기 있었다.
보드라운 것도 있었고 따스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아는 듯, 메마르고 거칠게 다가온 것들만 거뒀다.
그것들을 뿌리치지 못한 나는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난했고 현상을 비틀어 조롱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아름다운 글은 잘 쓰지 못한다.
비난과 조롱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길들어 순수를 잃은 지 오래니 더욱 그렇다.
이게 내가 가진 연의 한계다.
삶에 깃든 모든 것을 미처 알지 못했음을 안다.
돌이켜보니 강물도 아픔이 있었다. 돌도 마음이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흘러가는 대로 살자’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던 어머니도 있었고
노인정에서 배운 휴대폰으로 ‘사라ㅇ해 아드ㄹ’이라며 겨우 고백하던 아버지도 있었다.
영원에도 순간이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라고 어머니의 자장가를 기억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갓난아이라고 할미의 주름진 손을 기억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삶의 굽이쳐 흐르는 모든 시간은 물빛 아련한 기억의 순간들이었다.
순간에도 영원이 있었다.
어린 시절, 출근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 나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집을 나선다.
살고 자라나며, 그렇게 낳고 기르며, 지쳐 주저앉은 좁은 골목길 위에도
삶과 삶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시간길이 있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던 나는 원래 있던 그곳에 글혼을 남겨 둔다.
여백을 향한 글혼이 하얗게 날아오른다.
이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의 주인이 될 시간이다.
숱한 아름다움이 여기 있다.
흩날리는 그들이 연을 찾아 나섰으니
글 주인을 찾아낸 글들은 시공간을 깨뜨리고 나와 기어이 쓰인다.
낡고 지친 책상 모퉁이에, 오롯이 눈 뜬 등불 위에,
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거울 위에 쓰인다.
위태로웠지만 정직했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한 점의 부끄럼 없이 그대는 살아왔다.
내 안의 가치를 지켰고 공동체의 약속을 깨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장 정의로운 글은 그대의 글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하루는 버거웠다.
홀로 남은 시간, 때론 죽지 못해 사는 듯해 팔을 들어 새어 나오는 울음을 틀어막았다.
내 울음을 들키는 게 부끄러워 화장실로 숨어들어 한껏 울었다.
그리고 거울을 봤을 때, 가장 맑고 순수한 내가 있었다.
그러므로 가장 진실한 글은 그대의 글이 될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살아오며 내가 바랐던 수많은 것보다, 나를 바라던 그 작은 것들이 더 소중했었다는 걸.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걸.
이제 가장 가치 있는 글은 그대의 글이다.
언젠가, 우리를 많이 아프게 했던 한 권력자가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한다.
십만 권이 넘는 부수가 팔려나갔고 완판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의 피를 찍어 써 내려가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서초동의 촛불 십자가가 장엄해 보였단다.
그를 수호하려는 목소리가 집단 지성이었단다.
소중한 가치를 짓밟은 그가 저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 했단다.
글은 순수의 결정에 피어난 정신의 꽃이다.
수사의 장엄함은 자성과 성찰에서 비롯된다.
필봉의 끝은 고뇌와 고백으로 달궈진다.
바로 우리의 삶이 그렇다.
우리의 글이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글이 아니다. 명문의 성문이 아니다.
나라를 망치는 친문을 위한 잡문이다.
문단과 문장의 나열이 아니다. 비열함의 나열이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소리도 귀가 있다. 가슴도 입이 있다.
내 안의 진실한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안의 거짓을 가장 먼저 폭로하는 것도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사실을 아는 그대가 내 인생의 명문이었고 내 애절함의 나열이었다.
세상이 바라던 건, 바로 그러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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