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아무튼, 줌마]
입력 2021.06.12 03:00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정치 그만둘 때,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 물 먹는 심정으로 했어요(웃음).
회심이랄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한 발만 더 가면 국회인데, 과연 이 루비콘 강을 건너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었죠.
여길 건너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아서,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돌아보니 참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며칠 전 서울 삼청동 ‘지구와 사람’ 사무실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차를 마셨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정치인을 아담한 한옥에서 만나니
그렇잖아도 고운 여인이 더욱 단아해 보이더군요.
큰소리로 와르르 웃는 모습이 오래 알고 지낸 언니 같아 푸근하고 정겨웠습니다.
2008년 정계를 떠난 강 전 장관은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지구와 사람’을 자비로 꾸려왔습니다.
“놀고 먹고 책만 읽었다”고 농담하지만 ‘지구와 사람’은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자연과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지구법학 연구모임으로 자리 잡았고
관련 분야 학자들도 참여하면서 시민단체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8월엔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는 책을 내고,
일반인을 위한 15분짜리 강의 영상도 만드는 중인데,
이 얘길 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정치권에서의 러브콜이 여전하냐고 묻자 고개를 젓습니다.
“권력 다툼, 권력 게임, 이런 걸 즐기면서 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너무 드세질 것 같아서요.
끝까지 가봐야 별것도 없을 것 같고(웃음).”
나이 드니 대화의 중요성을 절감한다고도 하더군요.
“인생이 오해의 연속이라는 셰익스피어 말이 맞았어요.
오해를 풀려면 서로 얼굴 보고 얘길 해야 하죠.
검찰 개혁만 봐도 그렇잖아요?
정부가 생각하는 검찰, 검사들이 생각하는 검찰이 너무 다르니
자꾸 만나서 인식의 차이를 좁혀 가야 하는데 그게 이리도 어려우니….”
자신이 정치판에 있던 15년 전보다 정치문화가 더 나빠진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탄핵을 계기로 너무 많이 싸워서 그럴까요.
정치적 타협은 없고 뭐든지 끝장을 보려고 해서.
좋은 게 좋다고, 다 파헤치지 말고 덮어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출가’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열아홉에 출가하려다 대학 1학년 때 남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그만뒀다며
깔깔 웃던 그는, 정치를 떠난 현재의 삶을 ‘출가’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판사 변호사 장관까지 했는데도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알고 산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제가 너무 올드한가요? 하하!”
내가 누구이고,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늙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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