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 산림경영

colorprom 2021. 5. 24. 15:12

“산림조성 40년인데 오래된 나무?… 대규모 벌목 추진 성급했다”

이위재 기자

입력 2021.05.24 03:00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현 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은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76학번이다.

평생을 나무·숲과 보낸 학자이자 행정가다.

 

경북 예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초등학교 시절(1960년대)

마을마다 분주했던 식목(植木)·녹화(綠化)·사방(砂防) 사업을 바라보면서

나무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법대나 의대를 가라는 부친 만류를 뿌리치고 농대로 전공을 정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에게 나무와 숲은 ‘글자는 없지만 하늘이 만든 책(無字天書)’이다.

숲을 읽는 건 자신의 내면을 읽는 것이란 의미다.

 

그에게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산림청’2050 탄소 중립 산림 부문 추진 전략'과 산림 경영에 대해 물었다.

‘탄소중립’을 위해 숲을 대거 벌목(伐木)하고 어린 나무 30억 그루를 새로 심는 방안이다.

그 저변에는 “수령(樹齡) 30년 이상 된 나무가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전 원장은 “대학(산림자원학과) 동기들 카톡방에서 이번 조치를 놓고 난리가 났다”면서

“누군가 나서서 한마디 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만난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은

최근 벌어진 산림청 대규모 벌채 활동에 대해

“전문가들 조언을 충분히 듣고 시작한 일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장련성 기자

 

-탄소 중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벌목을 추진하는 산림청 방침에 대해 잡음이 일고 있다.

“좀 성급했다.

노령림(老齡林)이란 용어 자체가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가 민둥산에서 벗어나 녹화에 성공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대부분 40~50년 정도밖에 안 된 나무들이다.

 

사실 오래된 나무들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우리 산림에서 벌기령(伐期齡·베는 나무 나이 기준)을 함부로 낮추는 건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어떻다는 자료를 한국에 적용하기엔 쉽지 않다.

 

나무나 숲은 입지 조건이 중요하다. 기후에 따라 속성이 달라진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는 위도가 같아 나무들도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그 나라 숲과 나무가 이렇다고 우리 숲과 나무를 단정 짓기엔 생태계는 훨씬 복잡하다.

 

우리 산림만 해도 지형 조건에 따라

크게 중부, 남동, 남서, 해안 등 5개 생태권역으로 나누고

세부적으로는 다시 120여개까지 서로 다른 생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나무 특성이 다르고 이에 따라 관리 기법도 달라져야 한다.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산림청은 40년 이상 된 나무들이 급격하게 탄소 흡수량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든다.

급격히라는 단어는 과학적인 말이 아니다.

 

나무는 한 그루 그루보다 엽(葉)면적이 중요하다.

가지와 나뭇잎을 모두 합친 총합(생장 모듈)이 광합성 작용을 하고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한다.

나무줄기가 다가 아니다.

 

오래된 나무는 전체 덩치가 크다. 가지도 많고 나뭇잎도 훨씬 넓게 퍼진다.

그 나무가 감당하는 커버리지(coverage)가 더 중요하고 그게 탄소 흡수에 결정적인 변수다.

 

이 외에도 나무가 뿌리 내리는 토양층은 생물 다양성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한다.

함부로 나무를 베거나 뽑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산림청 연구 결과는 숲 지상부만 놓고 본 단편적인 내용일 수 있다.

탄소 흡수 기능을 이야기할 때는 나무뿐 아니라 나무와 토양을 합친 생태계를 봐야 한다.

그래야 탄소 흡수와 배출, 저장 기능을 균형 잡히게 보면서

탄소 흡수 기능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19일 오전 충북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야산.

대규모 벌목 작업이 이어지면서 거의 민둥산으로 변했다. /신현종 기자

 

-산림청장은 ‘산림 경영’ 활동의 하나라면서 벌채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산림 경영(Forest Management)은 필요하다.

하지만 숲을 단순한 관리 대상으로만 보기 시작하면 깊게 들어가지 못한다.

넓게는 ‘생태계 경영(Ecosystem Management)’ 수준에서 숲을 바라봐야 한다.

그건 단순히 숲이 어떤 경제적 효용을 지니고

국가적 차원에서 무슨 이득이 있느냐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 숲에는 역사적인 사연도 있고 마을마다 가진 숲에 대한 토속적 신앙도 많다.

정서적인 측면이 배어있다.

어떤 정책적 목표를 위해 숲을 이렇게 다루겠다는 시도는 사려 깊지 않다.

 

경제적 측면과 사회적· 환경문화적 측면을 다 고려하고 그 교집합이 클수록 바람직하다.

 

고사목(枯死木)만 해도 그냥 눈에 거슬리니 치워버리라고 취급할 대상이 아니다.

고목은 죽어가면서 생명을 이어준다. 다른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된다.

살아있는 나무만 볼 게 아니다.”

 

원장은 특히 산림청이 이번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해 아쉬워했다.

사회적 합의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과학적인 정책도 궁극적으로 구성원들 합의로 굴러가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진리가 있나.

(산림청이) 이번 벌목 관련한 계획은 왜 그런지 좀 서두른다는 인상을 준다.

국민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건

공공 기관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왜 국민들이 저렇게 생각할까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고민하고 소통해서 새롭게 정책을 다듬고 손질한 다음 내놓아야 한다.

 

정책 기관이 뭔가 해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틀리면 고쳐야 한다.

전문가들이라고 다 맞나. 특정 전문가도 수많은 전문가 집단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기들만 맞는다고 우기는 건 과학자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는 2000년 4월 동해안 대형 산불 이후

숲을 어떻게 복원할지를 놓고 현장 지휘관을 맡은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 환경부는 “자연 복원이 이뤄지도록 손대지 말자”고 했고,

산림청은 “산사태 위험이 있으니 신속히 조림(造林) 사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맞섰다.

거기에 인근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해 중구난방으로 논의가 표류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각계 전문가를 추천받아 무려 176명을 모아 의견을 받고 논의했다.

쟁쟁한 전문가들이 총출동한 셈.

그마저도 미흡했는지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공청회와 설명회까지 열었다.

 

결국 절반은 조림하고 절반은 자연 복원하는 절충안을 통해 불만을 최소화하면서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했는데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꼭 나오더라.

그런 분들도 붙잡고 하나하나 설득해가면서 마무리했다.”

 

전 원장은 당시 과정을 정리해 외국 저널에 논문으로 싣기도 했다.

 

-원래 이런 대규모 벌목이 과거부터 계속 있었다고 하는데.

“과거엔 그랬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부 나무를 남겨놓고 벌목하는 것으로 개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우려한다는 것은 반성을 요구한다.

 

탄소 흡수, 탄소 흡수 하는데 산에 단지 그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경관(景觀)을 유지하는 것도 한 측면이다.

개벌(모두베기)을 한답시고 흉측하게 벌채하는 건 답답한 일이다.

 

경제림으로서 숲이 임업(林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숲이 가진 역할 중 하나다.

그렇지만 그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숲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상과 철저한 조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정 목표를 위해 나무를 마구 베는 건 문제가 있다.

과연 그 이론적 기반은 충분히 갖춰져 있나 의심스럽다.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에 맞춰 어디를 벌채하고 어디를 가꾸고 어디를 보존할 것인가를

조사 결과에 비춰서 체계적으로 정교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서울 용마산에 있는 현사시나무 숲을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해 잘라내고

그 자리에 경제수를 심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이 항의했다.

용마산에 있는 현사시나무를 보며 마음에 위안을 얻곤 했는데 왜 마음대로 자르냐는 것이다.

 

이처럼 산림 경영산림 생태계를 이해하면서 사람과 숲의 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사유림이라고 맘대로 해도 된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나무가 자라 주위로 뻗어가면 그 자체로 공적 기능을 발휘한다.

이런 숲을 재산권 행사라고 함부로 자르면 지역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사회적 소통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다만 사유 재산권을 제한할 때는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보상해줄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이런 경우 산주(山主)에게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반발이 심하다.”

 

-그렇다면 산림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우리 선조들은 나무와 같이 역사를 일궜다.

고려 태조 왕건은 송악에 나무를 심어 민심을 장악하고 왕조를 일궜다.

세계 역사에 나무를 심어 개국한 나라가 어디 있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 전

서까래(한옥 지붕을 구성하는 목재) 3개를 메고 내려오는 꿈을 꿨고

이게 왕이 될 길몽(吉夢)이라고 해석한 일화가 전설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무는 그만큼 조상들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나무를 자르는 걸 굉장히 꺼려하는 습성이 있다.

‘동티 난다’(마을의 오래된 나무나 바위처럼 오래된 걸 함부로 하면 벌을 받는다는 뜻)는 말이

그런 유래를 담고 있다.

 

산림 경영이란 궁극적으로 ‘에코 시스템 서비스'다.

생물 다양성뿐 아니라 민족적 성정, 역사적 기원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나무는 벌목할 때도 손을 안 대는 이유가 있다.”

 

-나무와 숲은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나무는 수억 년 전부터 이 세상을 가꾸며 살아왔다.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생태계를 지탱한다.

그래서 세계 민족에게 나무가 신앙으로 자리 잡은 곳도 많다.

우주목(宇宙木)이 있고 신단수(神壇樹)가 나온다.

서낭당으로 나타나는 수목(樹木) 신앙은 오래된 우리 민족 풍습이다.

러시아에도 ‘샤먼 트리(巫木)’가 있다.

 

나무는 비유하자면 ‘우주의 물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무를 너무 무시한다.

나무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나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와 산은 동일체다.

단지 이 산에는 나무가 몇 그루, 저 산에는 몇 그루 이런 식으로 데이터로 이해하기엔

그 내포하고 있는 생물학적 깊이가 너무 웅대하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국토 중 산림이 가장 넓다. 64%쯤 된다.

이것이 미래에 어떻게 가치를 보존하면서

국민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더 진지하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루면서 나선형 발전을 펼쳐 나간다.

일종의 ‘회복 탄력적 사고(resilience thinking)’를 중시해야 한다.”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

서울대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1990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를 시작으로 공직(公職)에 입문,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산림환경부장을 거쳐

2012년 국립수목원장에 올라 2014년까지 있다가 물러났다.

이후 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1992년부터 2000년대까지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국제 회의에 정부 전문가로,

사막화방지협약 국제 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여했다.

 

‘우리나라 귀화식물의 분포’ ‘백두대간의 생태계 현황 및 관리범위 설정’

‘지속가능 발전시대의 산림관리 방향’ 등 연구서가 있고,

나무에 대한 애정과 인연을 담은 에세이집 ‘다시, 나무를 보다’에 이어

최근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