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유머 “브래드 피트, 나 영화 찍을때 어딨었나”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
입력 2021.04.26 11:35 | 수정 2021.04.26 11:35
시상식후 프레스 룸에서 브래드 피트와 기념사진 찍는 윤여정./로이터 연합뉴스
“제 이름은 윤여정인데요.
많은 분들이 저를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시는데,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습니다.(웃음)”
배우 윤여정이 한국 영화계 102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은 26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윤여정은 시상자로 나선 브래드 피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다.
그는 감격해하면서도 영어로 또박또박 소감을 전했다.
시종 농담을 섞는 그의 화법에 좌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일단 브래드 피트 선생님 뵙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
미나리는 ‘미국산(産) 한국어 영화’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가 제작했다.
“정말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보통 제가 사실 아시아권에서 살면서 서양 TV프로그램을 자주 봤습니다.
그래서 TV로만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는데 오늘 직접 오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조금 정신을 가다듬도록 해보겠습니다.
아카데미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표를 던져주신 모든 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BREAKING: Yuh-Jung Youn wins @TheAcademy Award for Best Actress in a Supporting Role, presented by Brad Pitt.#Oscarshttps://t.co/ScDUrk0xaG pic.twitter.com/4IyZO2Ke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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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Supporting Actress Winner Yuh-Jung Youn's acceptance speech was hysterical. Watch the full thing: https://t.co/LsffGKAhao #Oscars pic.twitter.com/a23mys9amE
— Good Morning America (@GMA) April 26, 2021
93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수상소감을 말하며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윤여정은 이어 “미나리 원더풀”을 외치며 “패밀리에 감사하다”고 했다.
“스티븐, 정이삭 감독님, 한예리, 노엘 우리 모두 영화를 찍으면서 함께 가족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님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감독님께서는 우리의 캡틴이자, 제 감독이셨습니다.”
그는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습니까.
글렌 클로즈 배우님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사실 경쟁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그냥 운이 좀 더 좋아서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분들이 한국배우들에게 굉장히 특히 환대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자리에 있기 기도했는데 너무 감사드립니다.”
윤여정은 특히 두 아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두 아들이 저한테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을 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잔소리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되었네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기념촬영하는 윤여정./AFP 연합뉴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출연한 첫 영화의 감독 고(故) 김기영에게 감사를 돌렸다.
“김기영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첫 감독님이셨습니다.
저의 첫 영화를 함께 만드셨는데 여전히 살아계셨다면 저의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오스카行' 윤여정 “이혼 후 진정한 배우 됐다…두 아들이 날 여기까지 오게 해”
스포츠조선=이승미 기자
입력 2021.04.14 08:25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유력 후보로 떠오르며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배우 윤여정이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미나리' 스틸
영화 '미나리'의 미국 배급사 A24는 13일(현지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윤여정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A24는 "윤여정과 '미나리' 속 그가 연기하는 순자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녀가 순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온라인 프레스 투어를 하면서 윤여정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 됐는데,
그때 윤여정이 에이미 카우프만 작가에게
'나는 70살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집에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윤여정은 A24를 통해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이 있으면 혼자 담배를 피운다. 그게 나를 위로한다"라며
"또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자 취미다.
나는 TV를 보거나 졸거나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송구한 말 일 수도 있지만 정말 자가격리를 즐기고 있다.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무도 안 만나도 상관없다.
하루 24시간 집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침대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와인을 자주 마신다며
"매일은 아니지만 촬영 후 긴장을 풀고 싶을 때 와인을 마신다"고 덧붙였다.
영화 '화녀'(1971)
윤여정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술, 마약 도박을 경계했다.
"술과 마약, 도박에 돈을 쓰지 말라. 그것들에 돈을 쓰는 건 현명하지 않다.
나는 주로 친구들을 위해 저녁을 사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나 자신을 위해 옷을 사는데 돈을 쓴다.
나는 아주 구식인 사람이기 때문에 30~40년 동안 입을 비싼 옷을 산다.
나는 여전히 40년 된 옷을 입는다."
그러면서 "노래방은 가지 않는다"라며 "노래를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정형적인 한국인이 아니다.
실제로 노래방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덧붙였다.
두 아들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내 두 아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나는 싱글맘이 된 후 진짜 배우가 된 것 같다"라는 윤여정은
"나는 영화에 푹 빠진 사람이 아니었다.
우연히 배우가 됐고, 21살에 데뷔작인 '화녀'(김기영 감독, 1971)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대단히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싱글맘이 된 후,
두 아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이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두 아들 덕분이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사랑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
사랑은 자동차 사고와 같다"고 입을 연 윤여정은
"당신이 어떤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당신의 마음도 잃어버리고 눈도 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지게 될 거다.
물론 때로는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성숙한 사람이 될 거다.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건 꿈일 뿐이다"고 말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을 위해 13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윤여정 “할리우드 동경 안 해… 미국은 아들 보러 온다”
미국 방송 인터뷰서 또 솔직한 입담
입력 2021.04.28 08:53 | 수정 2021.04.28 08:53
윤여정은 28일 미국 NBC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내가 할리우드를 동경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NBC 캡처
‘미나리’의 할머니 연기로 아카데미 유리 천장을 뚫은 배우 윤여정(74)이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I don’t admire Hollywood)”고 말했다.
윤여정은 28일(현지 시각) 미국 NBC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작업(project)을 제안 받고는 하는데
한국인들은 내가 할리우드를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미국에) 계속 오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미국에 와서 일하게 되면 (미국에 거주하는)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기 때문일 것”
이라며 “이것이 내 진심(from the bottom of my heart)”이라고 했다.
NBC 방송은 윤여정에게 ‘K그랜드마’(한국 할머니)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윤여정은 글렌 클로스와 브래드 피트를 존경한다고 했지만,
작은 경고를 하자면 그는 할리우드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윤여정은 지난 25일 시상식 당일 한국 특파원단과의 기자 간담회에서도 농담으로
“나는 미국 사람들 말 잘 안 믿는다. 단어가 화려하지 않나”라며
“내 퍼포먼스를 존경한다는데 내가 너무 늙어서 그런지 남의 말에 잘 안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날 NBC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일이 없으면 따분해진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며
“직업은 당신의 한 부분이고, 당신의 이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대변한다”고 했다.
이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의 순간은 매우 행복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지는 않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윤여정, 오스카 협찬 의상 250벌에 “난 공주 아니다” 거절
입력 2021.04.28 13:43 | 수정 2021.04.28 13:43
드레스에 항공 점퍼를 입은 윤여정.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Frances McDormand, Yuh-Jung Youn, Chris Pizzello/Pool via REUTERS
“세계적인 브랜드가 윤여정 선생님에게 ‘입어달라’ 매달렸다.
돈을 들여서라도 비싼 비용을 기꺼이 내가며 윤여정이 선택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 멋진 ‘대배우’는 화려한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6일(한국시각) 미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역사를 새롭게 쓴 윤여정의 스타일을 책임진 앨빈 고(Alvin Goh)의 말이다.
그는 미국 뉴욕포스트 페이지 식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초고가 의상만 250벌이 넘는다”면서
“화려한 장식의 의상도 많았지만 윤여정 선생님은 ‘난 공주가 아니다. 난 나답고 싶다’며 물리쳤다”
고 말했다.
앨빈 고 패션뷰티 스타일링 전문가
싱가포르 출신으로 현재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앨빈 고는 그동안
엠마 왓슨, 틸다 스윈턴, 우마 서먼, 다코타 존슨, 마고 로비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의 의상, 메이크업 등 전체적인 스타일과 패션 전략을 담당해왔다.
윤여정과는 이달 초 열린 미국배우조합상(SAG) 때부터 호흡을 맞췄다.
윤여정을 ‘YJ’라고 부른다는 그는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며, 모두가 꿈꾸는 그런 할머니”라고 말했다.
한 달 정도 윤여정과 쉴새 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직접 만나보진 못했다.
코로나 감염증 때문에 모든 작업이 줌(zoom) 화상회의로 이뤄졌다.
홍콩-서울-뉴욕-LA를 동시에 연결하느라 새벽 3시에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기 일쑤였다고.
협찬이 쇄도해 전화통이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여정은
“앨빈이 피곤할까 봐 걱정된다. 한국에 꼭 오라. 내가 맛있는 밥을 해주겠다”고 위로했다.
줌으로 화상 대화하며 피팅(fitting) 점검하는 윤여정과 앨빈 고/페이지 식스
그는 “스타들이라면 더 돋보이고 싶을 텐데, 윤여정은 아니었다”면서
“그녀가 한 말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난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 커다란 보석도 필요없다. 너무 화려한(crazy) 스타일은 싫다.”
초고가 거대 보석들 협찬도 줄을 이었는데
윤여정이 ‘너무 무겁다. 손을 들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윤여정/ 쇼파드 제공
윤여정 오스카 의상과 액세서리.
마마르 할림 드레스, 쇼파드 쇼파드 하이주얼리 컬렉션(Haute Joaillerie) 이어링&링&브레이슬릿,
보테가 베네타 아몬드 펌프스 /뉴욕포스트 페이지 식스
윤여정이 착용한 쇼파드 주얼리
윤여정이 착용한 보테가 베네타 슈즈
이날 의상 역시 세계적인 명성의 초호화 브랜드가 아니었는데도
윤여정은 “내 스타일”이라며 선택했다고 했다.
구김이 생기지 않는 편안한 원단이었다.
이날 원래 의상도 화려한 천이 덧대 있었는데 모두 떼어냈다.
윤여정은 “난 공주처럼 보이기 싫다. 그냥 내 나이답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새벽잠을 설치며 일하는 앨빈을 향해
“이제 그만 입어봐도 될 것 같다. 너무 피곤해 보인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단아한 스타일로 미국 패션지 보그 등으로부터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윤여정은
이날 시상식 무대 뒤에서 드레스 위에 카키색 항공점퍼를 입어
일명 ‘코리안 할머니 시크’를 연출했다.
항공 점퍼로 유명한 미국 알파인더스트리와 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이 협업한 제품이다.
♠[양상훈 칼럼] 시상식 윤여정 보며 떠올린 보릿자루 대통령들
국제 무대 선 윤씨의 당당함, 자연스러움
국익 위해 가장 윤여정 같아야 할 직업은 대통령, 현실은 그 반대
입력 2021.04.29 00:00 | 수정 2021.04.29 00:00
필자는 영화를 몰라 미나리와 윤여정씨의 연기에 대해 얘기할 것이 없다.
그러나 윤씨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그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자신감, 당당함, 자연스러움, 여유 있고 관용적인 태도,
좌중을 리드하는 능력과 적절한 조크는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인이 이만큼 무대를 휘어잡고 이끈 경우가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
박태환이 수영에서,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윤성빈이 스켈레톤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일었다.
배우 윤여정(왼쪽)과 영화 ‘미나리’ 제작자 브래드 피트.
윤여정은 25일(현지시작) 열린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미스터 브래드 피트, 우리 영화 찍을 때는 어디 계셨나요?”라는 농담으로 또 한번 세계를 웃겼다.
/AFP 연합뉴스
백인과 선진국 전유물로 여겨진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우리가 이만큼 컸구나’ 하는 벅찬 느낌이 있었지만,
윤여정씨의 수상식 매너를 보면서는 우리도 이제 촌티를 벗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윤씨가 산전수전 겪은 원숙한 배우이고 미국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의 경제 기적 이후 50년 세월이 축적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윤씨는 어렵고 화려한 영어를 쓰지도 않았다.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 그러나 작은 울림이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런 말과 태도는 한국의 일상 생활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윤씨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니
‘내년 시상식 진행은 윤여정에게’ ‘딱딱한 시상식장에 뜻밖의 선물’이라는 미국 사회 반응이 나왔다.
국제 무대라는 것이 어디 별세계가 아니다.
기초적인 외국어 능력과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기질, 자신감만 있으면 얼마든지 리드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미 이런 소양을 다 갖추고 있다.
기업의 CEO나 간부급 상당수도 여기에 도달해 있다.
정작 정치인들이 가장 뒤떨어져 있다.
윤여정씨의 반의 반이라도 할 수 있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한두 명 떠오를까 말까 하다.
그 정치인들 중에서도 특히 뒤진 사람들이 대통령이다.
한국은 외교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인데,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국제 무대와 아주 등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시상식장 윤씨를 보면서 국제 무대에 선 우리 대통령들 모습이 떠오른 것은
나라를 위해 가장 윤여정 같아야 할 사람이 가장 ‘비(非)윤여정’적인 현실 때문이다.
2019년 6월 28일 오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준비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이상하게도 한국에선 내향적, 내성적인 사람들이 대통령이 된다.
그 대표가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은둔형 외톨이 같았다.
누구에게 들으니 문 대통령은 최근 대부분 혼밥을 한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과거 청와대 비서실 시절 회의 때 무슨 의견을 내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도 말없이 혼자 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내향적 인물이다.
내향적 성격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한다. 그러니 외국인과는 어떻겠나.
문 대통령은 취임 전 해외여행 경험 자체도 적었던 것 같다.
노무현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15년 가까운 기간에
언론 보도상으로 출국은 3번(뉴질랜드, 히말라야 2회)뿐이다.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고 미국에 처음 가봤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에서 열리는 다자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외국 정상들과 어울릴 수 없으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TV 장면을 보면 문 대통령은 어색한 모습으로 빨리 행사가 끝나기만 기다리는 사람 같다.
거기에서 무슨 속 깊은 진짜 얘기가 오가겠나.
외교와 무역에 생존을 건 나라의 대통령이 이래도 되나.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이사장은 주간조선에서
“정신분석학 대가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으로 나뉜다고 했다”며
“열린 사회에선 지도층에 외향적인 사람이 많이 나오지만
실체보다 체면을 중시하고 위선이 많은 사회에선 내향적인 사람이 지도층에 많이 올라간다”고 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체면과 위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명분과 겉치레를 중시한다.
외향적인 인물은 구악으로 비치며 대통령으로 적절치 않다는 정서가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나 대통령을 선비나 지사(志士)처럼 여기는 경향도
내향적 인물 선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향적 인물은 개방적이어서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객관적인 여건이나 사실관계에 주목하는 반면,
내향적 인물은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생각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산다.
체질적으로 외교는 물론이고 정치와도 도저히 맞지 않는 이런 내향적 인물들이
어쩌다 대통령이 돼 국익이 걸린 국제 무대에 마지못해 나가는 일은 이제 끝나야 한다.
다자 정상회의에서 우리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친구처럼 어울리며 자리를 리드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규모는 그 정도가 됐다.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 선택하면 된다.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쿨’하고 ‘힙’하다
대본을 성경 읽듯 연기를 일상처럼
식혜 위 밥풀마냥 동동 뜬 인기 말고 스타 아닌 배우로 살던 대로 살련다!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 ‘쿨’하고 ‘힙’하다!
윤여정을 가리키는 최적의 수식어다.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여인.
그러나 오스카상을 포함해 영국 아카데미, 미국배우조합상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총 42관왕을 달성한 위업(?)에 더해
마이크만 잡으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소감을 빵빵 터뜨리며
거의 모든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평정해버릴 만큼 압도적으로 ‘쿨(cool)’하다.
194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5세의 할머니.
하지만 한 손에 오스카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채,
우아한 검은색 드레스 위로 카키색 항공 점퍼를 걸치고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누비는 모습이
젊은이들조차 감탄할 만큼 ‘힙(hip)’하다.
그 윤여정이 대세다.
하루 이틀 이러다 말 것 같지도 않다. 광고마저 온통 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여전히 까칠한 그가 우리를 이처럼 사로잡는 진짜 이유는 뭘까?
그게 궁금해졌다.
# “하루에 되는 스타하고 배우는 달라요.”
며칠 전 아카데미 수상식이 끝나고 늦은 밤 윤여정이 기자회견 모두(冒頭)에 한 말이다.
이미 스타 중의 스타가 됐음에도 윤여정은 스타이기보다 배우(俳優)이고자 했다.
스타는 반짝한다. 오래가기 어렵다.
하지만 배우는 무명일 때도 있고 유명할 때도 있으며 슬럼프를 겪을 때도 있겠지만
끝내 버티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존재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 열연한 동갑내기 배우 글렌 클로스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타길 바랐다고 말할 때
그것이 윤여정의 진심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말한 “하루에 되는 스타하고 배우는 달라요”라는 말 때문이었다.
여덟 번이나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상복은 없던 글렌 클로스다.
급기야 자신에게 밀려(?) 또다시 오스카상을 놓친 그를 향해
진심으로 글렌 클로스가 상 받기를 바랐다고 거듭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윤여정에게 욕심이 있다면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누구에게나 삶은 일순간의 성공이 아닌 지속적인 성장의 이야기일 때 더 가치 있기 마련이다.
윤여정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 철학은 열등의식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연기를 하게 됐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게 연기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과 더불어 연기를 접어야 했다.
그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요즘 말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됐다.
다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이혼 후 아이들은 키우며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생계’가 그를 다시 연기의 길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저는 절실해서 했거든요.
왜냐하면 정말 먹고살려고 했기 때문에 대본이 저한테는 성경 같았어요.”
그 어떤 말보다도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진심과 마주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구나, 살려고 몸부림쳤구나 하고 느끼며
나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드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여담이지만 오래전 그는 ‘무릎팍도사’라는 TV 프로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배우는 돈이 급할 때 제일 연기를 잘한다.
예술가도 배가 고프고 돈이 급할 때 좋은 작품을 만든다.
훌륭한 화가들을 봐라. 명작들은 배고플 때 나온다.
그래서 예술이 잔인한 거다.”
정말이지 정곡을 ‘콕’ 찌른 말 아닌가!
사람들은 윤여정의 이런 솔직함을 넘어서 그 매력적인 통찰에 매료되었던 것이리라.
# 다시 윤여정의 말이다.
“누가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프랙티스(연습, 실행)’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브로드웨이로 가는 지도상의 길이야 표지판을 보면 알 것이지만
정작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배우가 되는 길은 피나는 습관 같은 ‘연습’과 치열한 ‘실행’ 외엔
달리 방도가 없다.
스타는 운에 좌우되지만 배우는 노력에 좌우된다.
그는 그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지혜로운 배우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今道友信)는
매주 토요일 밤에 3시간씩 단테의 ‘신곡’ 원전을 주석서 두세 권과 함께 읽으며
노트를 만들어나가는 비밀스러운 습관을 50년 동안 지속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다시 1년 반 동안 15회에 걸쳐 강의를 해서
마침내 ‘단테 신곡 강의'라는 불후의 명작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윤여정의 반세기 연기 인생이 왠지 이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는 쉬지 않고 습관처럼 대본을 외우고 일하듯 성실하게 연기했다.
물론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일상 속 생활력’이야말로 오늘의 윤여정을 만든 것 아닌가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윤여정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 살던 대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부터 결심한 게 있는데,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을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탤런트 강부자씨가 윤여정에게 “지금 세상이 온통 네 얘기로 휩싸였다”고 하니까
그는 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언니, 그거 식혜에 동동 뜬 밥풀 같은 인기야.”
그렇다. 윤여정은 ‘식혜에 동동 뜬 밥풀 같은 인기’를 뒤로한 채
미국 NBC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는 속 깊은 까닭은
윤여정이 보여준 그런 어마어마한 행보와 톡톡 튀는 말솜씨 때문이기보다는,
그가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생활인’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 “비베 호디에(Vive hodie)!” 오늘을 살아라!
그렇게 산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을 이룬다.
켜켜이 쌓은 것은 견고하다. 윤여정처럼!
♠“얘, 내가 왜 화이트 와인만 마시겠니?”... ‘찐친’만 아는 윤여정 매력
[아무튼, 주말] 정치인부터 건축가까지 ‘올드 보이’가 본 윤여정
입력 2021.05.01 03:00 | 수정 2021.05.01 03:00
지난 25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윤여정이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는 모습. 한쪽엔 오스카 트로피, 다른 한쪽엔 화이트 와인을 뒀다. / KBS 유튜브 화면
“겉까속따(겉은 까칠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 “전무후무한 매력덩어리” “믹스 앤드 매치(섞어 입기) 달인”…. ‘오스카의 여인’ 윤여정(74)의 오랜 지인들에게 ‘인간’ 윤여정을 물었더니 돌아온 수식이다.
세상은 일흔넷 배우에게 이제야 풍덩 빠져 호들갑 떨지만, 40~50년 ‘절친’들은 그의 매력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란 걸 안다. 솔직 담백한 윤여정표 화법에 익숙한 이들은 “윤여정이 밥 자리에서 수다 떠는 모습과 똑같아” 아카데미 수상 소감이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교유(交遊)하며 한발 앞서 윤여정의 진면목을 알아본 ‘올드 보이'들의 얘기를 들었다. 베테랑 정치인부터 젊은 건축가까지 ‘윤여정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상을 타서 하는 칭찬이 아니라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신세 지고는 못 사는 ‘왕깔끔 여사’
50여 년 인연의 정대철(77) 전 국회의원은 윤여정더러 “깔끔함 그 자체”라고 했다. 아내가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해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건네줄 정도로 내외가 윤여정과 각별하다. “내가 미주리대에서 유학하고 있던 1970년대 중반 윤여정과 조영남이 시카고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 첫날 우리 집에서 묵었어요. 둘한테 안방을 내주고 우리는 애들 방으로 쫓겨났죠. 다음 날 외출하고 왔더니 윤여정이 우리 애들을 싹 다 목욕시켜 놨더라니까. 죽어도 신세 지고는 못 사는 깔끔한 성격이야(웃음).”
정 전 의원은 미국에서 ‘주부’ 윤여정이 지어 내준 집밥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다시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플로리다에 있던 윤여정 집에서 밥을 많이 얻어먹었다. 요리 솜씨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두부찌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라고 했다. 윤여정은 아이들에게 큰삼촌 같은 존재라면서 정 전 의원을 ‘큰아재’라 부르곤 했다.
2년 전쯤부터 그가 좌장이 돼 한 달에 한 번쯤 이장희,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 등 조영남을 뺀 쎄시봉 멤버, 성우 송도순과 함께 윤여정을 만난다. “한번은 윤여정이 얼(큰아들)이 늘(작은아들)이가 몰래 아버지를 만난 걸 알게 돼 속상해서 울었다고 하더군요. 자존심 세서 힘든 내색 절대 안 하는 사람인데 맘고생 많이 했구나 싶었지요.”
“찬바람 쌩쌩 부는 차가운 여자 같지만 알고 보면 의리파”라고도 했다. “수십 년 전 종로에서 국회의원 나가면서 평창동 살던 윤여정하고 김수현 작가한테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둘이 까칠하게 말하더라고. ‘어우~, 정치 얘기하니 벌써 덥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소리 소문 없이 많이 도와줬더라고요. 은근히 의리파예요.”
198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도 윤여정의 ‘의리’를 말했다. 그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진국 같은 사람”이라며 “전 세계인이 보는 아카데미 무대에서 첫 감독인 김기영 감독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의리 있는 배우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1997 년 부산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열어 김 감독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떨어지면 전화해달라”는 쿨한 여배우
“유머 죽여주지, 감각 끝내주지. 전무후무한 캐릭터라니까요.” 가수 김수철(64)은 윤여정을 “매력 덩어리 누나”라고 했다. 1970년대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은 누나 동생 하는 사이다.
절친의 눈에 포착된 디테일이 있었다. 시상식 후 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윤여정은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답변했다. 김수철이 기자에게 물었다. “누나가 원래 화이트 와인만 마셔요. 왜 그런지 아슈?” 머뭇거리자 김수철이 최근 ‘휴먼여정체'란 닉네임을 얻은 윤여정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누나가 전에 이유를 말하더라고요. ‘얘, 내가 그래도 명색이 여배우잖니. 레드 와인 먹고 입술 시커멓게 묻히고 다니면 되겠니?’ 하하!”
알고 지낸 지 50년 넘은 김동건(82) 아나운서도 윤여정의 위트를 인정했다. 윤여정은 과거 인터뷰에서 김 아나운서의 권유로 배우 길로 들어섰다고 밝혔다. 대학(한양대 국문과) 1학년 때인 1966년 학비를 벌려고 방송국에 아르바이트하러 갔다가 홍두표(현 TV조선 회장) 당시 TBC 편성부국장 눈에 띄어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진행 도우미로 출연했다. 그때 김 아나운서가 “이왕 TV를 하려면 탤런트를 해보라”고 해 TBC 공채 시험을 쳐 3기로 합격했다고 한다. 정작 김 아나운서는 “오래전 윤여정씨가 그 말을 해줬는데 너무 옛날이야기라 기억이 안 나더라”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문득 인연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윤여정씨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한 번 울리자마자 받았어요. 평소하고 너무 똑같아 아카데미상 후보가 된 사람 맞나 싶더라고요. 흥분한 건 오히려 나였답니다. 수상하면 축하 전화도 하겠다고 했더니 윤여정이 그래요. 떨어지면 전화해달라고. 보통 반대 아닌가요? 참 윤여정답다 싶었지요(웃음).”
윤여정에게 진행 도우미 기회를 준 홍두표(86) TV조선 회장은 “50여 년 전이라 그때 기억은 안 나지만, 신인 시절 모습은 생각난다”고 했다.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한 친구였어요. 이번 시상식 때 보니 그 눈빛이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윤여정이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이는 듯했습니다.”
◇말만 통하면 친구… 선(線)을 넘는 사람
최근 공개된 2016년 윤여정 데뷔 50주년 기념 파티 영상은 분야를 뛰어넘는 그의 마당발 인맥을 보여준다. 그중 한 명이 피수영(78) 박사다. 수필가 피천득의 둘째 아들로 국내에서 신생아학을 개척해 미숙아 1만여 명을 살린 명의다. 영상에서 윤여정이 “이분은 아버님이 더 유명하다. 자랑할 게 맨날 그것밖에 없어 큰일”이라고 농담할 만큼 막역하다. 피 박사는 “형(유명 DJ였던 피세영)이 윤여정씨와 인연이 있어 나도 4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처음과 지금, 앞과 뒤, 무대 위와 아래가 똑같은 사람”이라며 “정말 스마트하고 호기심이 많아 여러 분야 사람과 친분이 있다”고 했다.
김수철을 포함해 윤여정을 중심으로 뜻 맞는 사람 십여 명이 모인 사모임도 있다. 이름은 ‘지풍년(’지Χ도 풍년'을 줄인 말)’. 영화감독 이재용, 건축가 조민석,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이 멤버다. 김수철은 “누나는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니다. 분야를 따지지 않고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된다”며 “겉은 까칠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하고, 사귀는 건 쉽지 않지만 한번 사귀면 오래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윤여정을 중심으로 만든 모임 ‘지풍년’의 멤버 일부.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배우 강동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건축가 조민석, 평론가 이택광, 영화감독 이재용, 윤여정, 가수 김수철. / 가수 김수철 제공
◇싸구려 입어도 멋진 ‘믹스 & 매치’ 달인
‘지풍년’ 멤버인 조민석(55)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탄 유명 건축가다. 조민석은 서울 평창동에 있는 윤여정 집에 갔다가 모던 디자인의 고전이라고 하는 빈티지 가구와 천경자 그림을 무심히 둔 윤여정의 안목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윤 선생님은 매구(귀신같이 숨은 보물을 찾아내는 사람)처럼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 보물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라며 “본인은 ‘생계형 엔터테이너’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제가 아는 사람 중 예술적 직감이 아주 뛰어난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가치 있고 중요하다 생각되는 일엔 이득, 위험을 계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뛰어드세요. 배우로서 중요한 시기마다 독자적 안목과 신념으로 단호하게 예술적 선택을 해왔고요. 그게 ‘순도 높은 격(pure class)’ 아닐까요?”
쎄시봉 시절부터 알고 지낸 가수 김세환(73)은 “‘믹스 앤드 매치' 달인, 자연스러운 멋을 아는 멋쟁이”라고 했다. “1970년대에도 배우들은 명품을 휘둘렀지만, 윤여정은 비싼 옷과 싼 옷을 기가 막히게 섞어 코디했어요. 싸구려도 윤여정이 입으면 비싸 보였죠. 이번에 입은 드레스(마마르 할림)도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는데 얼마나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워요. 시상식 무대 뒤 항공 점퍼 차림도 멋있고. 그런 차림을 누가 하겠어요. 윤여정이니까 하지.” 그는 “쎄시봉 멤버 중 누가 패션을 알았겠느냐. 송창식? 조영남? 이장희? 알아보는 사람은 우리 중 나밖에 없었다”며 ‘패션 친구’의 수상을 제 일처럼 기뻐했다.
♠[동서남북] 윤여정의 50년 전 다짐
입력 2021.05.18 03:00 | 수정 2021.05.18 03:00
1971년 3월 청룡영화상 시상식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당시 윤여정은 영화 데뷔작인 '화녀'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엄마 나 상 탔어.”
정확히 50년 전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지금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1971년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자리였다.
당시 스물넷의 신인 배우 윤여정은
“이 벅찬 기쁨을 먼저 엄마에게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뒤 TV 카메라 앞에서 절했다.
‘화녀’는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 말미에
그가 고인이 된 김 감독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밝혔던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당시 청룡영화상을 주최한 조선일보는 1971년 3월 7일 자에서
신인 배우 윤여정을 향해서 축하와 함께 따끔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모험을 무릅쓰고 신인에게 무게 있는 상을 안겨준 것은
연기와 목소리가 따로 겉돌아온 지금까지의 ‘반쪽 배우(?)’에의 경고와 자극인 줄 안다.
윤여정의 발전 여부가 앞으로 우리 영화의 질적 향방을 가름하는 표본이 될 것이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만큼 만심(慢心)하지 말고 정진하기 바란다.”
1971년 윤여정이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의 인터뷰
‘그의 발전 여부가 우리 영화의 질적 향방을 가름하는 표본이 될 것’이라는 당부는
50년 뒤 그대로 현실이 됐다.
윤여정이 나흘 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흥미롭다.
“이번 수상으로 제대로 배우가 되기도 전에 스타라는 인상을 받을까 봐 걱정이에요.
그리고 선배들에게도 외람된 것 같고요. 하지만 정말 기뻐요.”
영화계 동료들을 먼저 챙기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솔직한 화법은 그때도 그대로였다.
인터뷰 말미에는 20대 배우 윤여정의 포부도 드러나 있다.
도전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질문에 그는
“근본적인 여성의 매력, 순종이나 미적인 감각을 벗어나 성격 배우로서,
특히 웬만해선 타협이 잘 안 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역”이라고 답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실제로 윤여정은 2000년대 홍상수·임상수 감독의 작품과 저예산 독립 영화에 출연하면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거듭했다. 이 때문에 ‘충무로의 대모’로도 불렸다.
50년 전의 다짐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당시는 ‘신인 배우’의 한국어 소감이었다면
지금은 ‘월드 스타’의 영어 소감으로 달라졌을 뿐, 윤여정은 언제나 윤여정이었다.
실은 그는 60년 전에도 같았다.
대한체육회장·문교부 장관을 지낸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은
1957년 중산육영회(현재 소강민관식육영재단)를 설립했다.
가난하지만 재주 있는 학생들을 발벗고 도와주기 위한 취지였다.
이 장학회의 1960년 4회 장학생이 윤여정이다.
1960년 윤여정이 중산육영회(현 소강민관식육영재단) 장학생 대표로 했던 답사.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세 딸 가운데 맏딸로 자라난 윤여정은
이 장학회와 연을 맺으면서 학업을 이어 갔다.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의 소장 자료를 통해서
당시 장학생 대표였던 윤여정의 답사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저희들은 이 자리에서 비록 변변치 못한 말솜씨나마
이 고마우신 여러 어른들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열심히 공부하여
이 나라의 없어서는 아니 될 일꾼이 되고
앞으로 저희들처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는 터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13세 소녀 윤여정은 그 결심을 지킨 셈이 됐다.
누구든 삶에는 연속과 단절의 지점이 존재한다.
윤여정의 반 세기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단절과 변화는
아마도 결혼 후 공백과 이혼 후 복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모습도 있다.
어쩌면 윤여정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50년 전 신인 배우 시절과 60년 전 고학생의 다짐이 그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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