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나라가 니꺼냐” 한국의 ‘서울’은 선거용 시한폭탄
입력 2020.07.27 18:03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이제 정국의 폭탄이 됐다.
내년 4월7일 재·보궐 선거도, 그리고 2022년3월 대통령 선거도
행정수도 이전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던진 행정수도 천도(遷都) 주장은
가장 강력한 시한폭탄이 됐다.
앞으로 있을 어떤 선거도 이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7월20일 국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이전해야 합니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서울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행정수도의 완성은 국토 균형 발전과 지역의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입니다.)"
이틀 뒤인 7월22일 이해찬 대표는 세종시 착공 13주년 기념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헌을 해서 수도 이전 규정을 두면 청와대와 국회도 세종으로 이전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수도는 세종에 둔다’고 하면 헌재 위헌 문제도 깨끗하게 해결됩니다."
민주당이 꾸린 ‘행정수도 이전 완성 태스크 포스’는 27일 첫 회의를 열었다.
만약 행정수도 이전이 완성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선 용어와 명칭부터 알아보자.
우리 국어사전에 ‘서울’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명사 ‘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고유명사 ‘서울’이다.
서울이 일반명사로 쓰일 때는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DC이고, 영국의 서울은 런던, 프랑스의 서울은 파리, 일본의 서울의 도쿄다.
그런데 서울이 우리나라에서 고유명사인 지명으로 쓰일 때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로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북한산·도봉산·인왕산·관악산 따위의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곳’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이 끝난 뒤 초등학생을 가르칠 때 이렇게 말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서울은 세종 시인데, 서울이라고 부르는 도시는 한강 하류에 따로 있다."
이렇게 해야 하나.
초등학생들이 이게 무슨 말이냐며 항의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참에 지금 서울의 도시 명을 바꾸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조선시대 명칭인 ‘한양(漢陽)’, 일제강점기 때 명칭인 ‘경성(京城)’도 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등학생들이나 외국인이 겪을 혼선이 사라질 수 있다.
"대한민국 서울은 세종시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최대 도시는 한양이다, 혹은 경성이다."
이것도 아니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집중 현상’을 없애기 위해
서울을 네댓 개로 쪼개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서울을 ‘경기도 서초시, 경기도 용산시, 경기도 성북시, 경기도 마포시’
이런 식으로 쪼개자는 것이다.
아니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금의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하니
아예 서울을 경기도 ‘천박시(淺薄市)’로 바꾸는 것은 어떻겠는가.
아울러 여당에서는 서울대, KBS 방송국, 산업은행 등등
공공기관 103곳의 지방 이전도 검토하고 있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20일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부터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340곳 명단이 포함된 ‘지역 혁신 생태계 구축 방안’을 보고 받았다고 한다.
또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난7월22일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이전 대상 103곳을 추려서 당에 보고했다"고 확인했다.
여기에는 서울대·인천대 등 주요 대학들, 그리고 KBS·EBS 같은 공영방송,
IBK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포함된다.
이뿐인가. 예금보험공사·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투자공사 같은 금융기관도 지방으로 내려갈 수 있다. KOTRA·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공항공사·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도 지방 이전이 거론될 것이다.
자, 이때 서울대를 세종시로 옮기면 명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가 세종시로 가면, 서울대란 명칭을 버리고, 세종대학교로 불러야 할까.
서울에는 1940년 경성인문중등학원으로 출범해서 1954년 수도여자사범대학이었다가,
1978년부터 서울시 광진구에 4년제 종합대학이 된 ‘세종대학교’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대가 세종시로 옮겨 가도 세종대로 개명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존 세종대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이참에 이름을 서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세종시로 내려가는 서울대를 그 시각부터 세종대로 부르고,
서울 광진구에 있는 지금의 세종대를 서울대로 부르자는 것이다.
아니면 서울대를 단과대학 별로 쪼개서 여러 지방으로 흩어버리고,
프랑스가 파리 대학을 파리1대학에서 파리13대학까지로 해체했듯이
우리도 서울대를 공중 분해시켜서 아예 서울1대학에서 서울13대학까지로 쪼개서
전국으로 흩어놓자는 얘기도 나온다.
행정수도가 이전되면, 한강 하류를 품고 있는 도시는 ‘서울광역시’가 되는 것이고,
충청도 금강을 품고 있는 도시는 명실상부한 ‘세종특별시’가 되는 것일까.
이 점도 몹시 궁금하다.
이제 여당이 주도하는 21대 국회가 청와대·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 등을 옮기는
새로운 행정수도 특별법을 제정하면
이것은 ‘지난번 헌재의 위헌 결정에 위배 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반복 입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문가 의견도 엇갈려 있다.
16년 전 헌재는
"(이런 특별법이) ‘우리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 헌법 사항을 (…) 변경한 것"이라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야당 의원들조차 ‘반대’가 아닌 ‘신중’ 입장이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전향적으로 검토 하겠다"며 사실상 찬성의 뜻을 비치고 있다.
이해찬 대표 말처럼 핀 포인트로 헌법을 고치면 된다.
아니면 헌법 제72조가 정한 바에 따라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아주 간략하게 돼 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헌법 제72조)
아무튼 여당은 김태년 원내대표 연설로 ‘정치적 대박’을 터뜨렸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앞으로 차기, 차차기 대선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 관심을 송두리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여당이 현안 쟁점을 선점하는 특수 효과를 누리게 할지 모른다.
민주당은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세종으로 행정수도가 옮겨가면, 통일된 이후에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때는 다시 개성쯤으로 옮겨가는가.
문재인 정권과 여당은 세종시를 천년 도읍지로 보는가,
아니면 통일될 때까지 몇 십 년 한시적 수도로 보는가.
혹시 더불어민주당은 통일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행정수도 이전을 꺼냈는가, 묻고 싶다.
고려 충신 길재는 송도를 그리워하며 시를 읊었다.
이제 그 시를 우리의 서울로 패러디해서 읊어본다.
‘6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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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7/20200727034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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