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김원웅 광복회장

colorprom 2020. 8. 19. 14:58

 

백선엽 반대, 이석기 옹호… 김원웅은 전두환 민정당 출신

 

 

입력 2020.07.16 06:00

 

범상치 않은 정치 행적
김원웅 광복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원웅 광복회장. /연합뉴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 10일 별세한 고(故) 백선엽 장군을 다음날 애도했다가

뜻밖의 봉변(逢變)을 당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11일 성명을 내고

"백 장군은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할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김원웅 광복회장“내정간섭적 행태”라고 공개 비판한 것이다.

김 회장의 광복회는 15일 백 장군 안장식이 진행된 대전현충원 정문 앞에서

안장 반대 집회도 벌였다.

백 장군 운구 차량이 진입하자 도로로 뛰어들기도 했다.

 

일각에선 “국내외 수많은 사람이 백 장군을 ‘영웅’이라고 했는데, 왜 김 회장이 이에 극성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국내 일부 진영이 달가워하지 않은 애도 표현을 한 정도로 ‘내정간섭’이라는 논리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원웅, 그는 누구일까?

올해 76세,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그는 시류에 따라 이당 저당을 왔다갔다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광복회장은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다.

출생지부터 남다르다.

1944년 당시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시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부모인 조선의열단 김근부 지사와 전월순 여사와 대전으로 터전을 옮겼다.
대전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재학 중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다 투옥되는 등 열성적으로 운동했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 민주공화당과 신민당 후보로 각각 출마한 박정희와 김대중. /주간조선

 


하지만 그는 졸업 후 그가 반기를 들었던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사무처 직원 공채 시험에 응시,

합격해 당료(黨僚)로 근무했다. 정치적 스탠스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암살됐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이듬해 민주정의당이 창당됐다.

그러자 그는 민주정의당으로 옮겨 이곳 사무처 직원으로 일했다.

 

1981년 1월 민주정의당 창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당 총재와 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후 부인인 이순자(오른쪽)씨와 함께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국일보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전두환 정권이 흔들거리며 정치 지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선거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 것이다.

결국 1990년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하며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김원웅도 민주자유당 당원이 됐다.

하지만 그가 이 거대 여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탈당했다.

이어 3당 합당을 반대한 인사들이 만든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들어갔다.

 

성공이었다.

그는 마흔여덟이던 1992년 이 당의 제14대 국회의원 후보(대전)로 출마해 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4년뒤 그는 재선에 도전했지만 패했다.

이후에도 노무현 등과 같이 민주당계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7년 돌연 한나라당 창당에 뛰어들었다.

민주당계는 그를 손가락질 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한나라당 의원일 때의 모습. /MBC 화면 캡처

 


욕은 먹었지만, 김원웅의 가슴엔 금배지가 달렸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그러다 그는 이번엔 한나라당에서 “철새”라 손가락질 당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된지 불과 2년 만인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당한 것이다.

노무현의 인기가 급상승하던 시기였다. 그는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다.

그는 그해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측면 지원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생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었다.

이듬해 김원웅은 개혁국민정당을 탈당, 새천년민주당의 후신인 열린우리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는 김원웅. /노무현 사료관

 

그 덕에 3선 했다.

이듬해인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전 대덕구에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국회 윤리특별위원장,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역임했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도 대전 시장에 도전했다가 크게 패했다.

그를 받아줄 곳이 더는 없었다.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재야를 돌았던 그는 2015년 남북 민족 운동 모임인 ‘민주통일정치포럼’을 창립했다.

전대협 출신 등 이른바 통일 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활동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일흔 다섯의 나이에 광복회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는 김원웅 광복회장. /연합뉴스

 


김원웅광복회가 백선엽 장군의 안장을 극렬 반대한 것이 “놀랍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그가 이미 지난해 광복회장이 됐을 때부터 정치적 중립을 어기는 발언 등으로

각종 잡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하고도 북한 찬양내란선동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이석기를 옹호

내부 상벌위원회에 제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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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여당의 추모 메시지는 끝내 없었다양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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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안익태는 친일, 백선엽은 사형감, 난 생계 때문"

 

 

 

입력 2020.08.17 10:41 | 수정 2020.08.17 11:59

 

"이승만은 친미"등 비판 공세
야당의 "본인부터 돌아보라" 지적에
'보수정권땐 직원으로 일하고, 진보정권땐 소신으로 일했다'는 식의 해명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원웅 광복회장은 17일 자신이 과거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등에 몸담았던 전력에 대해

“생계 문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회장은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록 생계이긴 하지만 거기에 몸담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친일 청산도 원죄가 있기 때문에 외치는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가 논란이 되면서 정치권에선

‘박정희 공화당→전두환 민정당→이회창 한나라당→친노(親盧)’로 갈아탄 정치 이력이 도마에 올랐다.

 

독립운동가 집안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72년 박정희 정권 민주공화당 사무처 공채에 지원해 당료(黨僚)로 근무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민주정의당이 창당되자 민정당으로 옮겨 요직에서 일했다.

그러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탈당해 이른바 '꼬마 민주당'으로 옮겨,

이 당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4년 뒤 낙선하자 1997년 돌연 한나라당에 합류해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다 다시 탈당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왔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됐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냈다.

 

 


이랬던 김 회장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보수 정치권을 “친일 반민족 세력”이라고 규정하자,

정치권에선 “자신의 과거 행적부터 돌아보라”는 말이 나왔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그 문제에 대해서 저는 솔직히 다 사실”이라며

“제가 생계를 꾸리고 젊은 시절에 가정을 꾸려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생계이긴 하지만 거기에 몸담아서 제가 몸담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박정희 정권) 공화당에 사무직원 공개채용 시험이 있기에

거기에 응시해서 제가 사무처 직원으로 들어갔다”며

그런데 그 공화당이 당이 또 바뀌니까 전두환이 집권하니까 그대로 민정당이 됐다”고 했다.

1990년 3당 합당 후 ‘꼬마 민주당’으로 옮긴 것에 대해선

“그전에는 (당료로 일하면서) 사무실 남 도와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윗사람들 약속 잡으라고 하면 약속 잡고

행사하는 데에 물품 준비하라고 하면 물품 준비하고 이런 것을 하는 거였다”며

“꼬마 민주당에서는 제 이름으로 제가 정치를 했고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제가 제 원칙과 노선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했다”고 했다.

 

보수 정권에선 ‘직원’으로 일했을 뿐이고,

진보 정권에 들어와선 자기 소신을 갖고 정치를 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김 회장은 “저는 과거 지울 생각이 없다.

그 반성으로 원죄가 있기 때문에 더 충실하게 지난 삼십몇 년 동안 살아왔다”며

이번에 제가 친일 청산을 외치는 것도 그런 원죄가 있기 때문에 원칙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

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이날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 안익태 선생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그는 안익태 선생의 친일 행적과 표절 의혹 때문에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안익태가) 베를린에 오래 근무하면서 일본의 베를린 첩보 담당 등 여러가지 친일 행적이 명료하다”

“국가의 가사가 불가리아 민요의 60% 베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故) 백선엽 장군의 6·25 전쟁 공적에 대해선 “과도하게 미화가 됐다”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 장군의 전공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김 회장은 “6·25가 난 날과 그 다음 날 장군이 이끌던 육군 제1사단이 안 나타났다”며

“그래서 1사단에 있던 장교나 군인들이 장군이 없어 그 다음 날 할 수 없이 도피를 했다.

그것만 가지고도 사형감”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에 미국에 빌붙어서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국가 이익을 챙긴 사람이지 건국 대통령, 이런 말을 붙이기에는 부끄러운 분”이라고 비난했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애국가도 갈아치우자는 김원웅 "안익태, 외국 민요 베꼈다"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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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김원웅의 본색은 친일청산 아닌 연방제

 

조선일보

 

  •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입력 2020.08.19 03:10

 

# 지난 주말 제75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행해진 김원웅 발언의 본색은

단순한 의미의 친일 청산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하자는 것이다.

 

이날 발언 중 특기할 것은 느닷없이 골드만삭스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굳이 인용하면 이렇다.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골드만삭스

남북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1민족 2체제로 서로 협력하면

수년 내에 프랑스와 독일을 따라잡고, 이어서 일본도 따라잡아

세계 최선진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찬란한 우리 민족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세력'이다."

 

압축하면 친일 기득권 분단 세력을 몰아내고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하자는 것 아닌가!

/박상훈

 

# 하지만 이 발언에는 교묘한 트릭이 있다.

 

먼저,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최근 것이 아니다.

11년 전인 2009년 9월 21일 내놓은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 188호(Global Economics Paper No. 188)

'통일 한국, 대북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에 담긴 내용이다.

 

둘째, 당시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한국인 이코노미스트 권구훈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으로 하버드대에서 사회주의경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1~ 2004년 IMF(국제통화기금) 모스크바 사무소 상주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부터는 송영길 의원 후임으로

문재인 정부의 북방경제협력위원장(장관급)을 맡고 있다.

 

셋째, 당시 이코노미스트가 작성한 골드만삭스 보고서에서 언급한 통일 한국이란

독일 같은 통일이 아닌 중국-홍콩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마디로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바탕에 깔고 쓴 것이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작금의 중국-홍콩 관계를 보면

그런 양자 간 관계가 남북 간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 백보 양보해서, 김원웅의 말처럼 친일 기득권 분단 세력이 소멸하고 1국 2체제 연방제를 하면

정말 통일 한국이 프랑스, 독일, 일본마저 제친 세계 최선진 강국이 되는 것일까?

 

권구훈2009년 리포트를 좀 더 들여다보자.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증시가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 지수에 편입되면서

장기 투자 목적으로 한국을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그 고객들이 북한 리스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자주 물어오자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보고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 보고서는 북핵 리스크는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북한의 광물 자원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008년 북한 GDP의 140배에 달한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허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북한 GDP의 140배' 운운하며 제시되는 수치는

미채굴 상태의 우라늄, 아연, 납 등 북한 광물 자원을 해외의 전략 투자자에게 판매한 후

이를 다시 장기채에 투자해서 얻는 수익까지 포함한 것이다.

한마디로 단순하게 특정할 수 없는 가상 가치인 셈이다.

북핵 리스크를 가린 채

오로지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려던 의도로 작성되었던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김원웅의 광복절 발언을 통해 연방제를 해야만 하는 이유로 둔갑한 것 자체가 허구요 난센스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때부터 공공연하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언급해왔다.

두 달 전 6·25 70주년 행사 때도 이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 10여 년 전 골드만삭스 리포트의 작성자를 수소문해서

장관급인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앉힐 수 있었던 것이고,

김원웅 같은 이를 광복회장에 앉힌 것 아니겠는가.

 

특히 김원웅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2월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낮은 단계의 연방제 실시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우선적으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광복회장이 되기 전에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회장이란 직함을 들고 다니며

김정은을 시대의 위인으로 추앙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조선의열단은 지난해 이른바 '서훈 논란'을 야기했던 김원봉이 조직한 단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현충일 때 느닷없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 서열 3위의 김원봉을 추켜세워

온 나라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배경에 김원웅의 부추김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김원웅이 광복회장을 맡게 된 시기도 바로 작년 6월이었다.

문재인과 김원웅은 김원봉연방제에 관한 한 동류항인 셈이다.

# 악마의 발톱은 항상 디테일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복절 행사가 치러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연단에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나라'라는 글씨가 눈에 띄지 않던가!

문재인 청와대의 괴벨스와 같은 존재인 탁현민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대한민국'이 아니라 굳이 '우리나라'라고 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5·10 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 자체를 깡그리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래서 일부러 김구백범일지에 나오는 '우리나라'를 표방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날 김원웅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단독정부[單政]를 이끈 일개인으로 호출하고

문재인은 아예 이승만을 무시한 채 오직 김구만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체를 시작부터 폄훼하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김원웅 발언의 대미(?)가 "대한민국을 광복하라!"였지만

그것은 곧 대한민국은 해체하고 1국 2체제의 연방제로서 김정은과의 '우리나라'를 광복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우리나라'를 위해 사회주의 부동산 정책의 광풍도 분 것이리라.

 

더는 이들의 역사적 장난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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