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64]까맣고 노랗고 하얀 색이 다 중요한 세상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06.17 03:12
김규나 소설가
"앵무새를 죽이면 죄가 된다는 걸 기억해라." 아버지가 죄라는 말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모디 아줌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아. 앵무새는 우리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축내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만들지는 않거든.
그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면 죄라고 하셨을 거야."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백인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한 흑인이 죽었다며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의 백화점과 명품 매장, 우리나라 교민들이 운영하는 상점 수십 곳이 약탈당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피켓 문구를
'흑인의 생명만 중요하다, 흑인과 흑인 옹호자는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1960년에 발표된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 용의자를 변론하게 된 백인 변호사와 그의 여덟 살짜리 딸을 통해
당시 미국의 흑백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그린다.
주민들은 혐의가 있을 뿐인 흑인을 당장 처형하길 원하고
흑인을 변호하는 일은 부끄러운 짓이라며 변호사와 그의 가족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증거가 무죄를 가리키는데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작품은 인간에게 해를 주지도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앵무새(정확히는 흉내지빠귀)를
죄가 없어도 희생당하는 흑인에 비유하고 있지만
흑인은 절대 죄를 짓지 않는 인종이라거나 죄를 지었어도 흑인이니 보호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흑인으로 사는 게 힘들다지만 백인 노숙자도 넘쳐나고
다양한 인종 속에서 코로나에 이어 시위 피해를 견디고 있는 한국 교민의 삶도 수월할 리 없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동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땅히 되찾아야 할 건 모든 생명과 인종에 대한 존중이지
특정 피부색에 한정된 무조건적인 보호와 배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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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6/2020061605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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