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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 케어'와 간병 피로

colorprom 2020. 6. 17. 14:04

[특파원 리포트] '노노 케어'와 간병 피로

 

조선일보

 

입력 2020.06.17 03:14

이태동 도쿄특파원

 

 

작년 11월 후쿠이현(縣)에서 70대 며느리가 남편과 90대 시부모를 수건으로 목 졸라 죽인 사건이 발생해

일본 사회가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며느리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를 모시는 와중에 남편까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홀로 세 사람 수발을 들다 돌이키지 못할 선택을 했다.

효부(孝婦)로 칭송받던 여성이 '개호(介護·간병) 피로'의 늪에 빠져 한순간에 살인자가 됐다.

이른바 '개호 살인'의 전형적인 사례다.

며느리는 정신 감정을 받고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을 떠올린 건 최근 가나가와현에서 일어난 '남편 교살 사건' 때문이다.

지난 5일 73세 주부가 한밤중 자고 있던 83세 남편의 목을 천으로 졸라 살해했다.

여성은 장남 신고로 들이닥친 경찰관들에게 "남편 간병에 지쳤다"며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범행 동기가 '간병에 따른 피로'라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족 사이라는 점,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노인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선 이 같은 '개호 살인'이 특별한 뉴스 취급도 못 받을 만큼 흔한 일이 됐다.

일본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간병 피로' 때문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 193건으로 연평균 40건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8%에 달하는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老)-노(老)' 케어가 보편화되면서

'노노 개호 살인'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후생성 조사에서는 간병을 필요로 하는 65세 이상 노인 환자가 있는 세대 가운데

주 간병인이 65세 이상인 세대가 55%였다.

노노 케어의 경우

'간병인도 환자 수발을 들다 체력적·정신적으로 병을 얻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전문 시설에 입소시키거나

직업 간병인에게 간병을 맡기도록 권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일본 정부도 이런 사회적 흐름에 맞춰 2000년 개호 보험을 도입한 뒤

40세 이상 국민들에게 의무 가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수요자인 노인 인구가 계속 늘면서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고,

개인 부담 보험금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려 본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약 15%인 한국

지금 추세라면 25년 뒤 일본을 제치고 고령화 1위 국가가 된다.

이미 한국에서도 노부부간 또는 나이 많은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경우가 늘면서

일본처럼 간병인이 환자를 학대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고 한다.

드물긴 하지만 '노노 간병 살인'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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