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펀쿨섹좌는 과연 섹시한가

colorprom 2020. 6. 13. 15:10

[魚友야담] 펀쿨섹좌는 과연 섹시한가

 

조선일보

 

 

 

입력 2020.06.13 03:00

[아무튼, 주말]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한화가 16연패를 탈출했습니다… 그것은 17연패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SNS에 이 헛웃음 나는 문장을 적어놓았더군요.

일본의 39세 환경대신 고이즈미 신지로의 해맑은 얼굴 사진과 함께.

그리고 달린 댓글 하나. '펀쿨섹좌.'

어쩌면 이 요령부득의 신조어야말로

요즘 세대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많이 알려졌지만, 펀쿨섹좌신지로 대신의 별명입니다.

 

이런 해프닝이 있었죠.

환경대신 취임 직후였던 작년 9월,

그는 미국 뉴욕의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석해 발언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문제를 논의할 때는… 펀(fun)하고, 쿨(cool)해야 하죠. 섹시(sexy)해야 하고요."

다음 날 일본 기자가 도대체 '펀·쿨·섹시'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걸 대답하는 건 섹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진지한 사람들은 당황했고, 가벼운 사람들은 환호하거나 인터넷 유행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했죠.

지난주 '아무튼, 주말'에서 기획으로 다뤘던 '(meme)'이 된 겁니다.

 

펀쿨섹좌는 이제 동문서답과 순환논법, 논점 일탈과 동어반복의 대명사로 부상했죠.

삶에 대한 태도의 세대차 혹은 개인차를 생각하다,

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소설가 김언수의 단편 '잽'(문학동네 刊)을 떠올렸습니다.

 

고교 1년생 주인공은 펀쿨섹시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건조한 윤리 선생에게 뺨을 맞습니다.

그 직전, 소년은 창밖에서 이런 풍경을 목격했죠.

운동장의 회오리바람이 9월의 은행나무 잎사귀들을 둘둘 말아 하늘 높이 올려 보내는.

팽이의 가파른 회전처럼, 토성의 띠를 이루는 얼음 알갱이처럼

은행 잎사귀를 머금고 빙빙 도는 바람. 그리고 감탄사 "아!"

왜 소리를 냈느냐는 선생의 물음에 소년은 본 대로 느낀 대로 대답합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바람이었습니다."

이런 경이로운 풍경은 인생에서 몇 번 오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고,

선생도 이해할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선생은 공감 대신 시계를 풀었 고, 스파이크를 날렸습니다.

회오리바람에 감탄하는 세대와 스파이크를 날린 세대 그리고 펀쿨섹좌의 세대 사이에서,

혹은 한 사람 안에 그 세 가지가 모두 있는 채로, 우리는 2020년을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념이나 젠더 문제 이상으로 이런 문화적 차이가 세상 갈등의 핵심일지도 모르지요.

아, 이 글을 마무리하는 밤, 한화는 17연패를 탈출했습니다. 펀쿨섹좌.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2/20200612027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