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윤미향 회계 의혹 (김광일 위원, 조선일보)

colorprom 2020. 6. 10. 14:51

[김광일의 입] 문대통령, 이용수·윤미향 중 누구 편인가

 

 

 

입력 2020.06.09 18:04

 


문재인 대통령은 ‘황희 정승’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중대한 일로 싸움이 붙은 양쪽을 향해서 네 말도 옳다, 네 말도 옳다,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황희 정승이 그렇게 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불거진 윤미향 사태에 대해 6분 동안 모두 발언을 했다. 글자수로 1890자 분량이다.

문 대통령이 어제 한 발언을 토대로 대통령이 어떻게 한쪽만 비호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는지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다.

지난 한 달 나라를 들끓게 했던 일은 ‘윤미향 사태’였지 ‘위안부 운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시종일관 ‘위안부 운동’이란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에서부터 위안부 운동은 시작됐다." 등등이다.

그래서 부득이 청와대 대통령 연설문 팀과 문 대통령에게 사태의 본질을 깨우쳐 주기 위해

우리가 대통령 발언을 한번 고쳐 보겠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다. 말씀 드리기도 조심스럽다."

이건 이렇게 고쳐서 말해야 한다.

"윤미향 의원 사태를 둘러싼 회계부정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고 중대하다. 말씀 드리기도 조심스럽다."

문 대통령이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에서부터 위안부 운동은 시작됐다."고 말한 부분도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닌데, 지금 시점에서는 이렇게 고쳐서 말해야 한다.

"한 달 전 이용수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고발에서부터 ‘윤미향 사태’는 시작됐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혼란스럽다"고 했는데, 국민들은 하나도 혼란스럽지 않다.

국민들은 화가 나고, 분노를 다스릴 길이 없으며,

회계부정과 관련된 의혹이 낱낱이 풀리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쓰거나 혹은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 보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 국민들은 윤미향 의원에 대해

"기부금과 정부 지원금을 도둑질한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단정 짓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지난 5년 간 정의연정대협에 흘러간 중앙정부, 지방정치 예산이 19억원이나 된다.

그런데 어디다 어떻게 썼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 돈은 국민 세금이다.

문 대통령과 관련 정부 부처와 사정 당국은 그 돈의 행방을 밝혀줘야 할 성실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와 수사를 철저히 해서 그 결과 언론과 국민이 오해를 했으면 오해를 풀면 될 일이고,

윤미향씨가 개인적으로 횡령했으면 죄를 물어 벌을 주면 될 일이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느니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느니,

참으로 옳은 말이긴 하나 지금 국면에서는 하나마나한 발언을 하고 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을 연거푸 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 어느 한 사람도 그 ‘대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문 대통령은 뜻도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폄훼(貶毁)’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그냥 ‘깎아내린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문 대통령은 최근 윤미향 의원에 대한 ‘의혹 제기’를 이렇게 엉뚱하게 해석했다.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다."

"반인륜적 전쟁범죄 고발과 여성인권 옹호에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문 대통령에게 묻는다.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을 ‘손상’시키려 ‘시도’했다는 식으로 발언했는데,

문 대통령이 말하는 ‘일각’은 누구를 말하며, ‘손상시키려 시도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혹시 그 ‘일각’은 윤미향씨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야당조선일보·중앙일보를 말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윤미향씨과 정의연에 대해 첫 고발을 한 이용수 할머니를 말하는가.

‘손상 시도’라니, 윤미향씨에 대한 개인적인 의혹 제기가 위안부 운동 전체에 대한 손상이란 말인가.

 

대통령과 청와대는 제발 애매모호한 표현 뒤로 숨지 말기 바란다.

이날 문 대통령 발언은 기본 전제가 잘못됐다.

지금 국민은 윤미향씨 개인의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마치 위안부 운동의 대의가 도전 받는 것처럼 얘기를 풀어갔다.

그러니 가려운 다리가 아닌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는 것이며 결론 또한 곁길로 새버린 것이다.

 

거의 모든 발언이 시비를 가려야 할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간 관계상 문 대통령 발언의 결론 부분을 따져 보겠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

 

이 말에는 숨어 있는 뜻이 있다.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기부금 관리의 투명성’을 높일 터이니

윤미향 회계부정 의혹은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뜻이 숨어 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화법인 것이다.

제대로 사태를 파악했다면 대통령은 이렇게 발언했어야 한다.

"윤미향 사태를 계기로 국민적 분노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부금 투명성 강화는 물론이고, 이번 의혹에 대해 사정 당국은 성역 없이 파헤치고 수사해서

국민적 의혹을 풀어주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실상도 없는 ‘기무사 계엄 문건’ 같은 경우처럼

적폐청산 관련이면 철저 수사를 여러 번 지시하더니,

윤미향 사태는 의혹 관련 근거가 산더미 같은데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데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참 편리한 대통령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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