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63] 더 가질 수 없어서 다행이다

colorprom 2020. 6. 10. 14:30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63] 더 가질 수 없어서 다행이다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06.10 03:12

김규나 소설가

 

 

우주 비행 연구는 중단되었다. 오버로드가 과학과 지닌 격차가 너무나 컸다.

인류는 우주 비행의 꿈을 포기했다.

힌트조차 주지 않는 원리로 만든 우월한 추진 장치를 그들이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로켓을 새로 개발하려 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오버로드는 지구에서 전쟁과 기아와 질병을 없애버렸을 때 인간의 모험심도 함께 파괴해버린 것이다.

- 아서 C. 클라크 '유년기의 끝' 중에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얼마 전 두 우주비행사를 태운 로켓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궤도를 돌며 두 달간 우주에 머물다 돌아올 예정이다.

대중화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우주 관광 시대는 곧 시작될 것이다.

1953년에 출판된 아서 C. 클라크의 SF 장편소설 '유년기의 끝'은

외계 생명체의 지배를 받게 된 미래 지구를 그린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공격도 해보지만

무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특별한 요구 조건도 없이

평화와 풍요와 오락만을 무제한 제공하는 그들의 통치 방식에 인류는 금방 익숙해진다.

 

 

오버로드라고 하는 외계인 치하에서 인간이 할 일이라고는 먹고 자고 여가를 즐기는 것뿐,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들의 놀라운 과학 문명 앞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엄두도 내지 않는다.

 

응석받이로 자라 혼자 살아갈 능력을 잃은 철부지처럼 인류가 맞이한 운명은 종말.

지구를 지키겠다며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점령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결말이다.

손톱 끝으로 가려질 만큼 작은 행성, 무한한 공간 속에 먼지처럼 떠 있는 조그만 점 위에서

수십억 명이 북적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우주에서 바라보는 고요한 그 순간에도 기아와 질병, 폭동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 같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더 가질 수 없어서, 다 이룰 수 없어서 그 결과, 아직 꿈꿀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모자람욕망이 성장과 발전의 열쇠다.

그걸 기억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해질 텐데.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9/20200609044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