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

colorprom 2020. 6. 8. 14:45

[강천석 칼럼] 김종인 통합당 앞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길

 

조선일보

 

 

 

입력 2020.06.06 03:20

 

현금 뿌리는 '나쁜 정당'이 승리하는 총선 기억 뿌리칠 수 있을까

강천석 논설고문

 

 

오른손잡이를 정상으로 보고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라며 구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舊)시대의 편견이다.

 

왼손 투수 류현진은 프로야구의 본바닥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해낸다.

지난 35년 동안 미국 대통령 가운데 오른손잡이는 카터, 아들 부시, 트럼프 셋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평가 기준은

나라가 당면한 현재의 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게 했느냐 여부다.

'좋은 정당''나쁜 정당'에 대한 평가 기준도 다르지 않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미래통합당의 변화는 어느 쪽으로 가는 출발일까.

빈 절간처럼 적막하고 패전(敗戰)투수처럼 풀죽었던 당내(黨內)에 사람 사는 기척이 들리기 시작한 건

분명한 변화다. '잊힌 정당'에서 '논란(論難)과 시비(是非)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 파문 때문이다.

'과거의 가치관과 멀어지는 일이 있어도 너무 시비하지 말아 달라'던 예고(豫告) 방송이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진보·보수·중도라는 말은 쓰지 말라'

'배고픈 사람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을 보고도 사 먹을 수 없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본소득 도입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

 

하나하나가 보수 유권자와 통합당의 본래 마당 사람들이 그냥 넘기기 힘든 발언이다.

당 안팎에서 '수상쩍다. 이러다간 2022년 또 하나의 더불어민주당이 탄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위원장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다.

뜯어보면 문제의 발언마다 무슨 전제(前提) 조건이나 앞말과 다른 뒷말이 달려 있다.

'국민은 불평등과 비(非)민주 문제를 해결하는 정당을 평가한다'

'보수가 끝까지 사수(死守)해야 할 가치는 자유다'

'박정희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노태우 정부가 국민연금,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을 도입했듯이

복지국가의 틀은 보수 정당이 만들었다'

'엄청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은 불가능하다.

일하려는 인센티브를 없애고 기본소득에 적당히 얹혀살려는 풍조를 조성할 위험이 있다'….

 

이런 뒷말과 앞말을 합치면 위원장의 속뜻이 아리송해진다.

여권 일부가 '2022년 대선의 중요 의제(議題)를 선점(先占)하려는 시도'라고 경계하는 것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진짜 차이는 무엇일까.

 

좌파 정당의 대표 정치 상품은 '우리는 가난한 사람의 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약속대로 식량·전기·생필품을 무료로 공급한다.

가난을 벗어날 고기 잡는 그물은 주지 않는다.

이런 세월이 길어질수록 가난한 사람은 좌파 정당에 기대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고,

좌파 정당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해야만 정권을 연장할 수 있는 공생(共生) 관계가 만들어진다.

'좋은 정당'은

가난한 사람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살아갈 지원과 가난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사다리를 함께 제공한다.

'좋은 정당'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못지않게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내일에 대비하면 더 큰 이익이 돌아올 줄 알면서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건

오늘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당'은 가난을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교육·환경이 얽힌 복합적 문제로 파악하고

가난한 사람을 옭아맨 족쇄를 끊어준다.

'좋은 정당'은 가난을 떨치고 일어선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지 기반이 넓어지고 튼튼해진다.

미래통합당이 '좋은 정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는지

'나쁜 정당'으로 추락하는 낭떠러지로 향하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걱정은 김 위원장이 지난 총선을 통해 공짜로 뿌리는 돈의 위력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나쁜 정당이 승리한다'는 유혹을 떨칠 수 있을까.

이 유혹에 무릎을 꿇었다면 2022년 대선은 '나쁜 정당' 간의 대결이다.

한국'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며

장병의 선두에 서서 낙동강 교두보를 지켜낸 백선엽 장군이 국립묘지에 몸을 누일 자리가 없는 나라다.

여당은 뇌물을 받은 전직 국무총리에게 내린 대법원 확정판 결을 뒤집으려 하고,

김정은의 여동생 한마디에 청와대와 내각은 온몸이 얼어붙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국민의 분노를 '야당다운 야당'이 받아주지 못하면 누가 받아주겠는가.

보수의 기본고장 난 부분을 고치면서도 겉멋 들어 고장 나지 않는 부분까지 손대지 않는 것이다.

김종인통합당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좁은 문(門)을 통과할 수 있을까.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6/20200606000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