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선포했다. 70세를 기대 수명으로 생애 주기를 결정했던 예전과 달리 100세를 새로운 생애 주기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60세는 예전 기준으로 하면 42세인 셈이다. 의학과 시술의 발달로 40대처럼 보이는 60대도 많고, 예전 기준으로는 은퇴할 나이지만 현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은퇴 대열에 선 사람들에겐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본질적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명함 속 직업과 직위를 자기 정체성이라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 후 사적 영역에 돌입하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생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삶으로 나눈다면 여성에 비해 은퇴 후 남성들이 더 취약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이 듦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젊어서부터 다양한 정체성을 오간 사람들이 훨씬 더 성숙한 노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젊음과 활력을 강조하고 개인을 성적 주체로 호명하는 것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삶은 노년에게 꽤 불리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해석이 필요하다.
"어떤 점에서는 늘 병을 앓고 있는 게 좋아요. 그래야 몸을 조절합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리고요. 그래서 늙고 병드는 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달라이 라마나 교황을 보세요. 우리 시대에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잖아요. 노인이라 안 아픈 데가 없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과 다 소통됩니다. 그것이 지혜예요. 지혜는 뭘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이 듦 수업에서 이렇게 얘기한 건 고미숙 선생이다. 선생은 청춘을 모방하지 말라고, 봄은 죽어도 여름을 알 수 없다고, 그런데 봄과 여름을 지나온 나만 아는 그 시간을 왜 스스로 부정하냐고 안타까워했다. 고령화 시대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세월이 비껴간 동안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말했으니, 이제 세월을 관통한 몸에 대한 재발견이 중요하다.
입력 2020.05.0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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