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대한민국 부패 방지용 ‘소금 목소리’ (김광일 위원, 조선일보)

colorprom 2020. 5. 8. 16:46



[김광일의 입] 대한민국 부패 방지용 ‘소금 목소리’ 터졌다


             
입력 2020.05.08 18:00

성서 누가복음 14장34절에 이런 예수 말씀이 있다.
"소금도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여기서 말하는 소금은 맛을 내라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세상의 부패 방지 역할을 하라는 준엄한 명령 말씀이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1면에는 모처럼 대한민국 부패 방지용 ‘소금 목소리’를 세 분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한 분씩 차례로 ‘소금 목소리’를 음미해보겠다.

첫 번째 ‘소금 목소리’는 최재형 감사원장에게서 나왔다.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원전 1호기를 너무 빨리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규정을 정확하게 지켰는지, 경제성을 고의로 축소 조작하지는 않았는지, 등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국회에 감사 보고서를 내야하는 법정 시한을 어기면서까지,
특히 지난 4·15 총선을 며칠 앞둔 4월9일, 4월10일, 4월13일 세 차례나 감사위원회를 열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보류 상태로 넘어가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4월20일 실·국장 회의를 열고 준열하게 꾸짖은 것이다.
그 ‘소금 어록’을 몇 곳 소개하겠다.

"‘성역 없는 감사’란 공직 사회에서 누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문제 제기조차 금기시되는,
감사할 경우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영역에 대한 감사다."
나는 일찍이 이것보다 더 명쾌하게 ‘성역 없는’ 수사나 감사를 정의한 말씀을 보지 못하였다.
감사원 감사관이나 검찰 검사,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성역’이 뭔지 모르겠는가. 그것은 손을 댔을 경우에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곳, 그곳이 바로 성역이다.
정권 눈치를 보던 감사원 감사관이 있었다면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최 원장이 기독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 말씀과 맥락이 똑같은 것이다.
또 최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검은 것을 검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정말 명언 중에 명언이다.
감사관에게 있어서 범죄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단순히 방관자로 남는 게 아니라
그 범죄에 적극 가담하는 것이나 같다고 되새겨 준 것이다.

최 원장은 옛날 경험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은 적진으로 달려들려고 하는데 병사들이 뒤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승패는 보나마나다.
반대가 되어야 한다.
병사들이 사냥개처럼 적을 물어뜯으려 하고, 지휘관이 오히려 시와 때를 가리는 지혜의 목줄을 잡고 있어야
사기가 충천한 군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단 감사원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든
그 기관의 기관장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불의와 부패를 솎아내려고 하는데,
오히려 아래 직원들이 주저주저하면서 기관장을 만류한다면, 그 기관은 죽은 조직이다.

두 번째 ‘소금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명운동에 앞장서온 올해 아흔둘 이용수 할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증오만 키우는 수요집회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
"학생들이 (수요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귀한 돈과 시간을 쓰지만 집회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대화를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겠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생각한다."
"수요집회를 없애더라도 사죄와 배상은 백년이고 천년이고 가도 받아야 한다."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선 데모가 아니라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관을 지어서 당당한 교육,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서 양국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가.
이처럼 폭넓고 스케일이 크신, 대승적이며 현실적인 판단과 지혜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집회와 데모는 증오와 상처를 키우기만 할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올바른 역사 교육과 더불어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이다.
툭하면 반일 감정을 부추겨 정치와 선거에 이용해왔던 집권 세력이 뼈아프게 반성해야할 말씀인 것이다.
물론 일본 아베 정권도 옷깃을 여미고 마음에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소금 목소리’의 주인공은 단국대 장영표 교수의 아들인 스물아홉살 장모씨의 발언이다.
서울대 공익 인권법 센터가 2009년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조민씨에게 발급한 인턴 증명서를 보고
장교수의 아들은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완전히 거짓입니다."
조국 씨의 딸이 받은 인턴증명서가 완전 거짓이란 뜻이다.
아버지 교수는 "조민씨가 역할이 커서 제1 저자로 넣었다"면서 조국 딸을 두둔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변호인이냐"라는 핀잔을 들었는데,
오히려 그 아들은 사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힌 것이다.
아들 장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가 조민의 스펙을 만드는데 도움을 줬기 때문에
저도 조국 교수님으로부터 스펙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장영표 교수의 아들도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어찌 깊은 번민이 없었겠는가.
아버지가 관련돼 있고, 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조국 교수가 관련된 일이니만큼,
시쳇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교수의 아들은 그것이 부모들 사이에 ‘품앗이 스펙 쌓기’에 다름 아니었다고 똑바로 말한 것이다.
장 교수 아들은 조국 씨 딸과 본인이 실제 서울대에서 인턴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활기록부에 있는 것처럼 번역 서류 정리, 회의장 안내 등의 인턴 활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런 활동을 했다는) 인턴 증명서는 참으로 완전한 거짓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장영표 교수는 세상 물정과 타협하는 진술을 한 아비와는 달리
끝까지 진실을 얘기한 아들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자, 이상으로 어버이날에 대한민국 부패 방지용 ‘소금 목소리’ 세 분을 들어봤다.
어제 만난 제 오랜 친구는 현 정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풀어야 할 숙제를 안 풀고 가면 나중에 호되게 당한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냥 덮어두고 총선 이후까지 넘어가버린 숙제들,
말하자면 ‘월성 1호기 폐쇄 의혹’, ‘반일 감정을 정치에 이용하기’, ‘조국 재판’ 같은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제 그것을 호되게 꾸짖는 ‘소금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8/2020050803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