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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선거 돈봉투'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

colorprom 2020. 4. 30. 14:15



[양상훈 칼럼] 2년 뒤 대선서 반드시 또 내밀 '선거 돈봉투'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20.04.30 03:20

과거 유물 선거 돈봉투가 명분과 제도의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해 위력 발휘
다음엔 '코로나 지원' 대신 '기본소득' 이름 달 수도
민주국가의 타락선거에서 시작된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이번 총선밉상 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선거 후 얘기를 들어보니
'야당이 이기면 돈(코로나 지원금) 못 받는다'는 심리도 저변에서 꽤 퍼졌던 모양이다.
야당도 '돈 더 주겠다'고 했지만 국고 열쇠를 쥔 여당이 하는 약속과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야당은 평소 이렇게 돈 푸는 데 부정적이라는 것도 다 알려져 있다.
'돈 줘서 여당 찍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 돈이 없었어도 여당이 이겼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가구당 100만원이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이 돈이 결정적 변수는 아니었다고 해도 여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투표 이틀 전에 7세 이하 어린이 263만명을 대상으로 아동돌봄쿠폰 40만원이 일제히 지급됐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3040세대 사이에선 당일 최대 화제였다고 한다.
'언제 주느냐' '뭘로 주느냐' '어디서 주느냐' '받았다' '못 받았다'는 등 인터넷이 종일 달아올랐다.

'투표 이틀 전'이란 것은 선거용이란 얘기지만 인터넷에서 부정적 반응은 '0'에 가까웠다.
아이 둘 있는 3040 부부는 총선 전후로 20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
대통령이 투표 전날 '100만원' 신청부터 받으라고 지시한 것,
해운대 구청장이 투표 전날 '5만원 준다'고 문자를 날린 것,
경기지사가 자신의 재난지원금 지급 '업적'을 돈 들여 광고한다는 것 등은
이것이 선거용이자 정치라는 뜻이다.

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수단이다.

과거 우리 선거는 돈봉투 선거였다.
1990년대 지방선거 때 일이다.
의원 보좌관이 전화로 소리를 지르고 있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한 마을에 돈봉투를 돌리고 다른 후보 측이 못 오도록 운동원들이 길목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네 주민들이 '다른 후보가 돈 들고 오는 걸 왜 막느냐'고 몰려나와 운동원들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돈봉투 선거는 전국에서 만연했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선거법 개정과 적극적인 수사, 판결로 이 선거용 돈봉투가 거의 사라진 것은
한국 정치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 대선에 쓰인 자금은 10년 전인 1992년 대선 자금의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그 두 대선을 모두 취재한 필자가 보기에
세계에서 이렇게 빨리, 이렇게 급속도로 선거 부패가 줄어든 나라는 없었다.
이제 선거에서 과거식 돈봉투 사건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돈봉투가 당당한 '명분'의 모자를 쓰고 공개적 '제도'의 옷을 입은 채 다시 등장했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이 처음부터 매표를 위해 코로나 지원금을 고안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세계 주요국이 모두 저소득층 지원금을 주고 있다.
우리 경우엔 선거와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분을 정권이 쥐고서 선거 때 국민에게 현금을 뿌릴 수 있게 됐다.
코로나 지원금이 '국민 생활 보조'인 동시에 '여당 선거운동'이 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처음 계획한 국민 50% 지급이 70%로 올라가고 다시 100%로 확대되는 과정은
선거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당 후보를 당선시켜주면 국민 100% 지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유세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당초 기재부가 국민 50%에게만 지급하는 안을 짠 것은 국가부채 문제도 있지만
이미 뿌려지는 현금이 많기 때문이었다.

근로장려금(5조원), 실업급여(8조원), 노인연금(13조원), 아동수당(2조원), 기초생활보장제도(12조원),
세금 알바(3조원)가 있는데
다시 자치단체 재난지원금(5조6천억원)에다 또 그 위에 전 국민 지원금(14조원)은 중복이라는 것이다.

사실 각 지자체에서도
'청소년 교통비' '등록금 지원' '독서 수당' '어린이 소풍비' '해녀 수당' '농민 수당' '청년 구직 수당'
'청년 채움공제'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현금을 뿌리고 있다.
이 역시 지방선거용이다.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현금의 힘을 또 한 번 실감한 만큼
다음 선거(2022년 대선)에서 선거용 '제도적 돈봉투'는 반드시 다시 등장할 것이다.
여당 말처럼 명분은 만들면 된다.

2년 뒤 대선 때는 '기본소득제'가 나올 것 같다.
코로나 지원금도 처음엔 '기본소득'이라면서 나온 것이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전 국민에게 매월 일정액을 월급처럼 주는 것이다. 장단점이 모두 있는 제도다.
대전제가 있다.
기존에 받던 모든 복지제도를 없애고 '기본소득' 하나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선거에서 기본소득제는
기존 복지제도를 상당수 그대로 두고 기본소득을 추가하는 형태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득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선거부터는 기본소득 올리기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모든 바이러스 감염이 손에서부터 시작되듯 모든 민주국가의 타락은 선거에서 시작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30/2020043000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