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85) 신부는 국내에서 ‘성서 신학의 일인자’로 꼽힌다.
정 신부는 프랑스에서 3년, 독일에서 7년간 공부했다.
8일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정양모 신부를 만났다.
-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당시 가톨릭 교리를 압축한 『천주교 요리(要理) 문답』이란 책이 있었다.
-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320개의 질문과 320개의 답변. 그때는 그것만 외우면 됐다. 그것만 받아들이면 됐다. 너무 편했다. 그래서 고민이 없었다.”
- 단순한 받아들임. 왜 그게 가능했나.
- “그때는 내게 신앙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성찰 이전에 교리 중심으로 살았다.
-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프랑스 유학을 간 뒤에야 깨달았다.”
정 신부가 가톨릭신학대 재학생일 때였다. 프랑스에서 장학생 추천서가 2장 왔다.
- 왜 그렇게 후회했나.
- “나는 리옹 가톨릭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다.
- 신학이나 성서학을 전공하면 주로 공부하는 게 있다.
- 왜 이런 그리스도교 교리가 생겨났나, 그 뒤를 캐게 된다.
- 교리가 생겨난 과정과 해석의 역사적 과정을 따지게 된다.
- 그걸 통해 기성의 교리를 재이해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 신앙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하니까.”
- 그런 과정을 거쳤더니 어땠나.
-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신앙의 패러다임, 교리의 패러다임이 흔들리니까.
- 그런데 나중에는 오히려 해방감을 맛보게 됐다.
- 기존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교 영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 말끝에 정양모 신부는 ‘동정녀 마리아’ 일화를 꺼냈다.
- 생물학적 접근이라면.
- “처녀가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낳을 수 없는가. 그것만 따진다. 그게 생물학적 접근이다.
- 그런데 ‘처녀 잉태설’을 이해하려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대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 구약 성경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출생은 남달랐다.
- 아이 출산이 불가능한 여성을 ‘돌계집’ 혹은 ‘석녀(石女)’라고 불렀다.
- 구약의 위인들은 주로 석녀나 노파에게서 출생했다.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출생이니, 그만큼 남다르고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구체적인 인물을 예로 들면.
- “예수님 이전에 세례자 요한이 있었다. 그도 그랬다.
- 세례자 요한은 석녀이면서 노파인 여인에게서 출생했다. 그만큼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이 보기에는 어땠겠나. 구약의 위인들보다 예수님은 더더욱 위대한 분이다.
- 만약 예수님이 석녀나 노파에게서 출생했다고 하면 어찌 되겠나. 구약의 위인들과 동급이 되고 만다. 그건 기독교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이 세상에 잘난 사람 많고 많지만, 그 누가 우리 님과 같으리오.
- 그래서 석녀 잉태나 노파 잉태보다 더 위대한 출생 이야기가 필요했다.”
- 그게 처녀 잉태인가.
- “그렇다. 석녀 잉태나 노파 잉태보다 현실적으로 더 높고, 더 불가능해 보이는 무엇이 있어야 했다.
- 그게 처녀 잉태, 다시 말해 동정녀 잉태다. 그래야 예수님의 출생 급수가 기적이 된다.
- 동정녀 잉태는 결국 ‘예수는 비길 데 없이 위대하다’는 말을 출생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다.
- 그러니 ‘동정녀 마리아’는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예수가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다.
- 이런 게 성서학 연구의 한 단면이다.”
- 이 말을 듣고 한국에서는 충격을 받는 신자들도 꽤 있지 싶다.
- 그동안 자신이 알던 성경 해석의 패러다임과 다르니까.
- “이게 세계 성서학계에서는 보편적 해석이다.
- 정말 꽉 막힌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렇게 본다.
- 소위 말하는 문자적 해석이 아니고 심층적 해석이다.”
정양모 신부는 ‘붓다의 출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 신부는 “이 일화가 무엇을 말하겠나. 부처님은 비길 데 없이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생물학적으로 처녀 잉태가 가능한가, 아닌가 따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거기에 담긴, 더 깊은 뜻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가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패러다임에 함몰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교회만 다니면 뭐하나, 예수공부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닌데
[중앙일보] 입력 2017.06.16 01:01 수정 2017.06.16 07:30 | 종합 25면 지면보기
- 종교개혁 500년 ④ 성서신학 석학 정양모 신부
-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인가?”
말하고 사는 방식이 예수와 닮으면 성당·예배당 안 가도 참그리스도인
어려운 예수공부, 더 힘든 예수닮기
진국 같은 사제 찾아 가르침 배워라
이것도 저것도 좋다는 ‘도도주의’ 가톨릭은 줏대 있게 범위 좁히고
이거냐 저거냐 가리는 ‘냐냐주의’ 개신교는 ‘애꾸’ 벗어나 넓게 봐야 - 정양모(82) 신부는 가톨릭 사제다.
- 프랑스 리옹대학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한다.
또 예수가 썼던 아람어를 비롯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도 능통하다.
성서신학에 있어서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히는 당대의 석학이다.
13일 그를 만나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루터의 종교개혁, 그 심장을 물었다.
-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당시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메시지는 뭐였나.
- “루터는 교회 제도를 부정했다. 그리고 '원천으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왜 교회 제도를 부정했나.“당시의 교회 제도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원천으로 돌아가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걸 막고 있었다.”
- 1517년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다 교회 개혁을 위해 함께 토론해보자며
- ‘95개조’를 담은 대자보를 내붙였다.
- 3년 후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오히려 루터를 파문해 버렸다.
- 이로 인해 루터의 종교개혁에 불이 붙었다.
- 교황은 왜 루터를 외면했을까.
- 정 신부는 그 뒤에 깔려 있는 역사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설명했다.
- 루터의 95개조, 뭘 뜻하나.
“교회에 개혁할 과제가 산적했음을 말한다.
- 루터의 95개조, 뭘 뜻하나.
사실 95개조 대부분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항이었다.
그런데 레오10세는 무시했다.”
- 교황은 왜 루터의 제안을 무시했나.
레오10세는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문예부흥)를 주도한 명문가였다. 문화인 중의 문화인으로 자처했다.
당시 교황은 알프스 산맥 이남인 라틴 문화권만 생각했다.
알프스 이북에 사는 게르만족을 야만족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라인강변에 있는 도시 쾰른까지는 봐 줄만 했다.
쾰른은 게르만땅이지만 로마의 식민읍이었다. 그래서 라틴 문화권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루터가 사는 비텐베르크는 달랐다.”
- 어떻게 달랐나.
“베를린은 쾰른보다 훨씬 동북쪽이다. 오히려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 어떻게 달랐나.
비텐베르크는 베를린에서 약간 남쪽인 시골마을이다.
교황은 알프스 이북에 야만족이 사는 시골마을의 교수 신부라는 자가
무엄하게 대드는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무시했다. 상대를 안 했다.
95개조를 들어줘야 했음에도 말이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교회 개혁을 위한 95개조를 내걸었고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교황청은 1520년 칙서를 내려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를 파문했고,
- 루터는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교황의 칙서를 불에 태워버렸다.
-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수로 돌아가자’고 주창했다. 그 의미는 뭔가.
“가톨릭 교회는 포괄적이고 포용적이다. 이것저것 지상의 가치를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수로 돌아가자’고 주창했다. 그 의미는 뭔가.
그러다 보니 복잡하고 신앙의 중심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루터는 ‘선택’을 부르짖었다.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이다.”
- 그건 어떤 선택인가.
“가톨릭은 성경과 전통을 말한다.
- 그건 어떤 선택인가.
개신교는 ‘성경은 예스, 전통은 노’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을 말한다.
개신교는 ‘예수는 예스, 성모와 성인은 노’다.
가톨릭은 구원을 위해 은총과 선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신교는 ‘은총은 예스, 선행은 노’다.
둘은 그렇게 다르다.”
- 그게 두 종교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건가.
“그렇다.
- 그게 두 종교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건가.
가톨릭은 신학도 복잡하고, 영성도 복잡하고, 제도도 복잡하다.
그래서 ‘중심’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개신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중시하다 보니 ‘애꾸’ 현상이 있다.
한쪽만 보는 거다.
이게 개신교의 기질이 돼버렸다.
그걸 가리켜 가톨릭은 이것도, 저것도 하는 ‘도도주의’,
개신교는 이거냐, 저거냐 하는 ‘냐냐주의’라고 부른다.
가톨릭은 범위를 더 좁혀야 하고, 개신교는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
그럼 공통분모는 없나.
“있다. 신약시대 안티오키아에는 일요일마다 모여서 성만찬을 거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찾았다. 시간만 나면 ‘그리스도’를 읊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게 공통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다.”
- 그렇다면 루터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기도 하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뭔가.
“교인이 누구인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교적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명목상으로 세례를 받고, 교적에 이름을 올리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은 따로 있다고 본다.”
정 신부의 발언은 뜻밖이었고 파격적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묻는 질문에 그는 “따로 있다”고 답했다.
교회에 이름을 올리고,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꼬박꼬박 헌금을 하는데도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은 따로 있다”고 잘라 말했다.
- 따로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많이 다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피실 적에 교회 안에도 비그리스도인이 수두룩할 수 있다.
교적에 이름만 올렸을 뿐, 예수공부와 예수닮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반면 성당이나 예배당에 다니지 않는데,
그 사람이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 어딘가 예수와 닮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실질적인 참그리스도인이라는 거다.
교적상 비그리스도인이지만 말이다.”
이 말끝에 정 신부는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꺼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복음 7장21절)
이어서 정 신부는 “이건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성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또한 세계적인 가톨릭 조직신학자 카를 라너(1904~84)가 50년 전에 이미 한 말이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 예수회 신부이기도 한 라너는 ‘20세기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 카를 라너는 뭐라고 했나.
성당이나 예배당에 오지 않지만, 사는 모습이 어딘가 그리스도인과 일맥상통한 사람들.
라너는 그들을 독일어로 ‘아노니메 크리스텐(Anonyme Christen)’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무명 그리스도인’이란 뜻이다.
교적에 이름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정 신부는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를 거듭 강조했다.
“예수 공부는 어렵다. 예수 닮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포기한다. 공부도 포기하고, 닮기도 포기한다.
그런데 그게 뭘 뜻하는지 아나. 그건 그리스도인이 되는 걸 포기하는 것이다.
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 어떡하면 되나.
“한국에는 가톨릭 사제가 6000명이다. 개신교 목사님은 약 10만 명이다.
그런데 성경을 파고드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다.
강론과 설교 수준도 문제다.
신자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참 중요하다.
만약 누가 신학적 소양이나 영성훈련을 받고 싶다면
이제민 신부님(마산교구)과 서공석 신부님을 추천한다.
서 신부님은 매주 강론을 인터넷에 올린다.
전국에서 수천 명의 목마른 신자들이 거기서 목을 축인다.
이 신부님은 일선 성당에서 사목은 하지 않지만 수백 명을 모아 계속 영성훈련, 신학훈련을 시킨다.
두 분은 가톨릭의 보배다. 진국이다.
제가 모를 뿐이지, 목사님들 가운데서도 그런 분이 더러 계실 것이다.”
- 왜 진국이 중요한가.
“주위를 둘러보라. 성경공부 그룹도 , 영성훈련 그룹도 많다.
그 중에서 진국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 빼앗기고, 돈 빼앗기기 십상이다.
진국이어야 역사적 예수든, 신앙의 예수든 제대로 찾을 수 있다.”
-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난다고 보나.
"교회의 제도가 마음에 안 드니까.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되니까.
그래서 귀찮기만 한 거다. 만약 도움이 된다면 사람들이 찾아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 교회는 귀찮은데, 예수는 매력적이다. 왜 그런가.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기축의 시대’를 말했다.
4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이 나타났다는 게 정설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과 농경생활을 했다.
불과 5300년 전에야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5000년 전에야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등장했다.
인류가 자신의 문명을 성찰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서기 전 600년에서 서기 100년 사이다.
그 700년 동안에 석가와 공자, 그리고 예수가 등장했다.
그들이 지난 2500년간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2500년동안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류의 과학은 장족으로 발전했지만, 정신문화는 기축문화의 영향으로 산다.
앞으로도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에게 매료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집단은 환영을 못 받아도, 깊이 깨달은 현자들은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안에 영성의 목마름이 있기에.”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교회만 다니면 뭐하나, 예수공부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닌데 …
'이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在野' 장기표씨 (최보식 기자, 조선일보) (0) | 2020.04.27 |
---|---|
미래통합당 김미애-부산 해운대을 당선인 (0) | 2020.04.25 |
[415총선]보수는 왜 대패했나… 전병민 前 청와대 정책수석 (0) | 2020.04.20 |
보수가 패배한 날, 레이건을 생각한다 (0) | 2020.04.18 |
'이기는 선거' 출간… 최광웅 前 인사제도 비서관(노무현 청와대) (0) | 2020.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