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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패배한 날, 레이건을 생각한다

colorprom 2020. 4. 18. 15:17



[터치! 코리아] 보수가 패배한 날, 레이건을 생각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4.18 03:16

美 보수 재건한 레이건은 말했다 "내일을 지키려 오늘 행동한다"
선거에 유리한 포퓰리즘 견제할 신념에 찬 매력적 보수가 필요하다

김신영 경제부 차장
김신영 경제부 차장


폴 라이언 미국 전 하원의장이 지난해 본지 행사에 왔을 때 공항 마중을 맡았다. 29세이던 1999년에 의원이 된 그는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꼽힌다. 차를 기다리며 한국 보수를 위한 조언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번영과 안정이라는 보수의 핵심 가치를 선명히 전달해야 합니다.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말이죠." 엊그제 총선 개표 방송을 보다가 라이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보수 야당이 (또) 크게 진 날이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수당은 자주 위기에 빠진다. '개인의 자유 경쟁을 통한 번영'이라는 보수의 철학보단 지갑에 돈 직접 꽂아주겠다는 포퓰리스트 진보 정당의 유혹이 유권자에겐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링컨의 정당'인 미 공화당도 한때 사정이 안 좋았다. '뉴딜'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장기(1933~1945) 집권한 후 '큰 정부'를 표방하는 진보당(민주당)의 기조가 대세로 굳어지는 듯했다. 지리멸렬하던 보수를 구한 사람은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그는 TV 쇼 진행자였던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배리 골드워터) 지지 연설을 너무 잘해 정치 스타로 떠올랐다. '선택함의 시간'이란 당시 연설은 지금 들어도 짜릿하다. "우리 선택지는 좌우 따위가 아닙니다. 위아래일 뿐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오랜 꿈을 향해 도약하겠습니까, 아니면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개미 땅굴로 기어들어 가겠습니까. 선택할 시간입니다."

레이건은 달변이었다. 그렇다고 이미지만이 무기는 아니었다. 대통령학 대가인 리처드 뉴스타트는 책 '대통령의 시간'에 레이건의 강점을 '일관된 헌신과 강한 신념'이라고 평가했다. 한때 민주당 지지자였던 레이건은 과도한 세율에 반발해 공화당으로 전향하고서 줄곧 '작은 정부'라는 보수의 지향점을 지켰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세금과 정부 개입을 줄이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힘껏 보장했다. 규제 고삐가 풀렸고 IT와 금융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경제가 살아났다. "내일을 지키기 위해 오늘 행동한다"며 '미래'를 앞세우자 젊은이들도 호응했다. 20대 지지율이 70%까지 치솟았다. 1984년 한 대학생이 뉴욕타임스에 한 말이다. "등록금 보조금이 깎였지만 괜찮아요. 일자리가 늘었으니까."


한국 보수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강령만 보면 레이건과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간섭을 막는다' '복지 정책이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강령뿐이었다. 눈앞의 표를 두고는 여당의 포퓰리즘 정책을 따라갔다. 때로는 한발 더 나갔다. 택시 기사 표를 의식한 여당이 '타다 금지법'을 발의하자 통합당은 '타다 금지'를 아예 당론으로 정해버렸다. 국민 70%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가구)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을 때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씩을 주자고 했다. 그야말로 '받고 따블'이었다. 재정을 챙기는 맞춤형 복지를 지향한다는 당의 정체성은 퇴색했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라는 구호도 공허해졌다. 절 싫다고 떠나면 뭐 하나. 다른 절도 비슷한데.

포퓰리스트 정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늘어난다. 포퓰리즘은 전체주의로 귀결되기 쉽다고 역사는 거듭 증명하고 있다. 이를 견제할 더 치열하고 매력적인 보수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구태의연했던 미 공화당은 '신선한 보수' 레이건을 영입해 그 정신을 가까스로 다시 세웠다. "보수의 심장엔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이 있다"는 레이건의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대로 구현하는 사람이 안 보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7/20200417036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