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부족주의' 출간한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 인터뷰 "집단 정체성이 국가 운명 좌우하고 세상에 큰 영향... 영화 '기생충' 보고 학생들과 함께 토론했다 한국은 인종문제 없지만 계층 양극화 심한 나라 타이거 맘으로만 알려진 것에 지쳤다, 하하!"
“정치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집단 본능’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념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정체성에 근거해 투표한다.” 딸 둘을 중국식 스파르타 교육으로 키운 이야기를 쓴 ‘타이거 마더’(2011)가 너무 유명해 ‘극성 엄마’이기만 할 것 같지만 에이미 추아(58)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전문 분야는 법과 경제성장, 국제 상거래, 민족 분쟁, 국제화 등이다. 첫 책 ‘불타는 세계’(2003)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로마제국 등 역사적 제국의 흥망을 다룬 ‘제국의 미래’(2007)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명세를 얻었다. 2011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도 들었다.
◇“‘타이거 맘’ 이미지 지겨워… 전문 분야로 돌아가고 싶어 쓴 책”
이번에 국내 소개된 ‘정치적 부족주의’(부키)는 추아의 다섯번째 책. 원제는 ‘Political Tribes’로, 미국에선 2018년 출간됐다. 이메일로 만난 추아 교수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좀 웃긴데, ‘타이거 맘’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에 지쳐서다! 내 전문 분야인 민족 갈등과 외교 정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80명 학생들을 줌으로 온라인 강의하랴, 새 책 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 겨우 짬을 내 답했다는 이메일의 수많은 느낌표(!)가 에너지 넘치는 그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책의 핵심은 “인간에게는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부족 본능’이 있는데,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족적 정체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종, 민족, 지역, 종교, 분파’ 등에 기반을 둔다”는 것.
추아 교수는 “미국에서는 부족 정체성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나타난다”고 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는 두 개의 백인 부족으로 분열돼 있다.
하나는 정치 활동 참여도가 높고 자신을 ‘세계 시민’이라 생각하는 ‘도시/연안 지역’ 백인이다.
이들은 자신이 ‘부족적’인 것과는 정반대라 생각하지만,
사실 ‘코즈모폴리턴주의’는 고학력에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볼 수 있었던
엘리트 계층의 배타적인 ‘부족적 표식’이다.
두번째 백인 부족은 교육 수준이 낮고 인종주의적이며, 애국적인 ‘농촌/중서부/노동자 계급’ 백인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신성한 것’이라 가르쳐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교단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 신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엘리트 계급을
‘진짜 미국인’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저 멀리서 권력을 지렛대를 통제하는 소수 집단이라 생각하며
경멸한다.
이는 노동자 계급에 강력한 부족적 정체성을 형성했는데,
바로 트럼프 당선에 크게 일조한 ‘반기득권 정체성’이다.”
◇ “이데올로기 아닌 ‘집단 본능’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추아 교수는 “트럼프 당선 후, 지난 20년간 내가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전형이라 여기고 연구해 온
정치적 역학 관계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백인 국수주의자인종족민족주의자(ethnonationalist) 운동의 봉기, 권위주의로의 요동침,
제도와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 약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집단간 제로섬 경쟁으로 탈바꿈하는 것 등이
한 예다.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집단적 양극화라는 특정 형태로 격렬히 갈라져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책을 썼다.”
그는 “‘집단 본능(group instinct)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다.
“가족이나 부족, 혹은 민족이나 국가 같은 집단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의 힘이 매우 강력하고,
아마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혹은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세상의 사건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간은 일단 무리에 속하면 그에 애착을 갖고 옹호하며,
자신이 속한 무리가 모든 곳에서 우월하다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 “영화 ‘기생충’ 보고 학생들과 토론… 한국도 계층별 양극화”
미국 이야기니만큼 책은 인종 문제에 천착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가장 큰 정치적 이슈는 인종간 갈등이라기보다는 좌우 이데올로기”라고 했더니,
추아 교수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
‘계층(class)’이란 단어를 쓰겠다”고 했다.
“지금 한국인들이 계층별로 매우 양극화돼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이 민족적·인종적으로 균질하다는 사실이 ‘계층’ 갈등을 훨씬 더 가능하며, 치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내 수업에서 영화 ‘기생충’과 관련해 한국에 대해 토론했다.
주로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미국서 계층 붕괴가 드문가를 이야기했더니
한국 학생이 한국을 흥미로운 대조군으로 들었다.
인종적 다양성이 없지만 계층 갈등이 양극화의 중심 경계선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예일대 로스쿨은 매우 리버럴한 경향이 있어서 수업의 학생들이 대부분 ‘기생충’을 좋아했다!”
소속 집단이 우월하길 바라고 충성하고자 하는 본능은 자칫 테러리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열쇠는 뭘까?
추아 교수는 “어려운 질문인데!”라며 고심했다.
“계층이나 민족 등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한 무리를 만들어보려 노력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때때로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한 예로 뉴욕 양키스 팬은 흑인, 백인, 아시안, 부자와 빈자 등 모든 인종과 계층을 포괄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미군도 그랬다.
요즘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나라가 점점 더 다양성을 갖춰가는데무엇으로 그를 하나로 묶느냐하는 것이다. 많은 좌파들, 특히 마이너리티들은
조지 워싱턴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어떤 충성심도, 연대감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은 ‘백인 쓰레기’들의 ‘집단 본능’ 결과물
추아는 2016년 트럼프 당선이 ‘백인 쓰레기’라 불리는 가난한 백인들의 ‘집단 본능’ 결과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지만 근본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유대인 등이
미국에서 자신의 인종적, 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해 자부심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게 허용된, 아니 독려된 반면, 백인 미국인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이 고유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가졌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이것이 부족적인 본능의 모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비(非)백인 인구는 이런 식으로 부족 본능에 빠져들도록 독려받았다.
하지만 백인 미국인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백인 정체성이란 누구도 자랑스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종민족주의의 아류가 오늘날 백인 미국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한 마디로소수 집단이 더 고마워할 줄 알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주장은
가난한 애팔래치아 지역 출신 백인인 J.D.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2016)와도 상통한다.
추아는 “J.D. 밴스는 내 학생이었다! 내가 그의 멘토였고, 그의 책에 내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을 쓴 이유가 바로 나다!”라며
“이번 대선에서도 백인 노동계급의 집단 본능이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생각하지만
주로 사회취약계층을 공격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떤 변수가 될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타이거 맘’으로만 기억되긴 싫다고 했지만,
집필 막바지 단계에 이른 새 책에선 다시 ‘타이거 맘’ 이야기를 한다.
“‘타이거 맘
’의 전편이자 속편인 책이다!
타이거 맘 책 출간 10주년인 내년에 출간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해 추아는 맏딸 소피아(27)가 브렛 캐버노 연방 대법관의 로클러크(대법원 재판 연구관)로 채용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