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25 03:16
女性의 몸 품평하고 조롱해도 문제 없다는 여당과 공영방송
정권과 결탁한 여성단체들이 '잡놈들 전성시대'를 열었다
민심이 곧 법(法)이라지만, 경기 안산에서 김남국씨가 당선되는 걸 보고 잠시 혼돈에 빠졌다.
미성년자 성 착취를 일삼은 'n번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직후라 더 그랬을 것이다.
변호사가 직업인 그는 500원만 내면 누구나 들어가는 팟캐스트 '쓰리연고전' 출연자였다.
'섹드립(성적 농담)과 욕설이 난무하는 연애상담'이라 대놓고 자랑하는 이 방송에서
출연자들은 "가슴이 머리만 하네" "남미 계열 백인이 탄력이 좋다" "결혼 전 100명은 따먹고 가야 된다"
"빨아라"는 말들을 쏟아냈다.
함께 나와 낄낄댄 이도 나름 명사들이다.
YTN에서 시사프로를 진행하고,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단골로 출연하고,
온갖 방송에서 여당 대변자로 나오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그래서인지 옹호 세력이 막강했다.
지상파부터 김어준 '다스뵈이다'까지 누비는 양지열 변호사는
"김남국은 진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너무 고지식해서 주변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김남국 공격은) 네거티브이자 마타도어"라며 발끈했고,
윤호중 사무총장은 "정도가 심하지 않다"며 감쌌다.
'고지식한' 김남국씨는 왜 '공자 왈 맹자 왈 찾는 사람은 청취를 삼가라'고 경고한 저질 방송에
스무 번도 넘게 나간 걸까.
KBS도 거들었다. '저널리즘토크쇼J'의 임자운 변호사는 김남국 성희롱 논란을 보도한 언론을 향해
"김남국과 n번방 사건을 엮어 민주당 전체를 공격하려 했다"며 질책했다.
'기승전-권력편'인 이 방송은 밥 먹듯 편파 방송을 하면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 프로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만 '묻지 마 공격'하던 최강욱 변호사는 청와대로 직행했다.
"n번방은 우리 사회 일그러진 성(性)문화가 만들어낸 범죄"라는 주장에
"일부 사이코패스의 일탈을 왜 모든 남자 탓으로 돌리느냐"며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권에 유난히 관심 많다는 김남국씨를 비롯해 그를 옹호한 정치인, 변호사, 시사평론가들 덕분이다.
이른바 엘리트라는 남자들이 죄의식 없이 쏟아내는 성적 농담과 욕설을 보라.
여성 혐오 가득한 그 말들이 자라 여성 학대, 여성 폭력, 여성 살해를 낳는다.
탁현민의 '따먹다'와 쓰리연고전의 '따먹다', 정준영의 '따먹다'와 n번방의 '따먹다'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인종까지 들먹이며 여성의 몸을 품평하고 조롱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문화, 이를 묵인하는 사회에서
제2, 제3의 'n번방'은 만들어진다.
이런 위인들이 국회 등 공적 영역으로 진출한 데는 여성들도 한몫했다.
김남국 사건을 비판한 여당 내 여성 의원이 있었던가.
세월호 추모식에서 민주당 이재정 당선자가 김 당선자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다.
'쓰리연고전'의 저질 행태를 문제 삼은 여성 단체도 못 봤다.
진영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여성의 인권에 눈감는 80년대 악습,
정치와 결탁한 여성 단체들의 타락이 안희정-정봉주-민병두-오거돈 같은 인물들을 줄줄이 배출하고 있다.
김남국씨뿐이랴.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완장을 차고 여의도에 입성한 면면을 보니
좌파 경제학자 우석훈이 2015년
에 쓴 명문(名文)이 떠올랐다.
"우리는 드디어 만개한 잡놈들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국가가 많은 것을 틀어쥐고 금융과 방송을 완벽하게 장악해
고전적인 공론장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국가는 잡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제 어쩔 것이냐, 이 나라를! 우리의 삶은!"
보수 정권을 향했던 이 개탄은 총선 후 대한민국에 더 어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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