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英 공연 전날 소련군 체코 침공, 민주화 시위 시민들 희생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2악장 연주 중 눈물… "첼로도, 그도 울었다"
솔제니친 지원 등 의식 있는 지성인 변신, 모든 특권 뺏기고 탄압받아
유럽 연주회 중 시민권 박탈, 16년간 망명… 냉전 끝난 뒤 조국 방문
1968년 여름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간 바캉스 기간에도 런던에 남은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음악 축제 BBC 프롬스가 매일 저녁 열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8월 21일 공연은 BBC 프롬스 사상 가장 인상적인 연주회로 기억된다.
그날은 당시 서방에서 보기 어려운 소련 국립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전날에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시내에 소련 군대가 진입했다. 소련군 탱크가 비무장 프라하 시민들을 짓밟아 137명이 희생됐다.
그 내용은 그날 아침 런던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그날 런던의 한복판에서 소련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이 연주회를 하는 것이었다.
蘇최고 첼리스트, 英공연 때 인생 전환
공연 시작 전부터 공연장 주변에는 소련군 철수를 주장하고 소련 악단의 연주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200여 명이나 눈에 띄었다. 공연이 이뤄질지도 알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청중은 악단과 함께 온 협연자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당시 서방에서는 '철의 장막' 뒤편에 있던 소련 연주자들의 수준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 ~2007)는
KGB 요원의 경호 속에 무대에 올랐다. 연주곡은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이었다.
하필 체코 음악을 소련인이 연주한다는 모양새는
체코를 침공한 소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은 시작됐다.
로스트로포비치는 검객이 칼을 다루듯 거침없이 활을 저으며 육중한 저음을 청중의 가슴에 꽂았다.
일찍이 이런 연주가 있었던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의 명연이었다.
그런데 2악장이 흐르면서 첼리스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청중은 목격했다.
사람들은 그들만의 분노에 가득 차서 연주가의 심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청중은 "첼로도 울고 그도 울었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자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로스트로포비치는 악보를 높이 들었다.
체코의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었다.
그 공연은 런던 청중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가장 큰 감격을 안은 것은 로스트로포비치 자신이었다.
그는 연주하는 순간에 자신을 체코 사람처럼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소련에서 첼로를 가장 잘하는 사람, 딱 거기까지였다.
소련 당국은 체제 선전을 위해 뛰어난 연주자를 해외에 보내 연주하게 했다.
해외여행을 마음껏 하는 일반인이 그들이었으니,
피아노의 길렐스와 리히터, 바이올린의 오이스트라흐 등이었다.
그중 한 명인 로스트로포비치도 주어진 특혜를 마음껏 누렸다.
좋은 집에 별장과 고급 자동차까지 제공받았다.
국내 연주에서도 항공편을 이용했고 최고 호텔의 스위트룸에 묵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볼쇼이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인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소련 최고의 유명 커플이었다.
그랬던 그가 런던에서의 연주회로 변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사회적인 인간, 의식 있는 지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