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14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일러스트=김영석](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3/13/2020031301670_0.jpg)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명예로운 직책이 있다.
성천 문화재단 이사직이다.
'얼마나 감투가 아쉬우면 저 나이까지 이사로 있나?' 할 것 같기도 하고
'문화재단이 어떻게 100세 넘은 늙은이까지 이사로 두나' 할 것 같은 생각도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성천 유달영 선생이 90이 되면서 나에게
"내 아들이 이사장이 되어도 큰 실수는 안 할 것입니다. 김 선생이 좀 잘 이끌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아들에게는 "김 선생을 끝까지 잘 모시라"고 유언에 가까운 뜻을 전했다.
내가 90이 되면서 후임을 선출해달라는 의미로 사의를 표하고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내가 90이 되면서 후임을 선출해달라는 의미로 사의를 표하고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연임을 결정해 버렸다.
그 후에도 임기가 끝날 때마다 떠나려 했으나 못 하고 있다.
지금의 임기가 끝나면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내가 맡은 일은 별로 없다.
다른 이사들은 사회에 널리 알려진 저명인사들이다.
이사회가 끝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내가 강의 비슷한 얘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이사는 "그 재미에 나온다"면서 고맙게 생각해 준다.
지난 2월 하순 이사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연기할까 했으나,
내가 "대중교통이 아니고 다행히 개인 차편이 생겼다"고 해서 모임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내 변명은 있다.
그래도 내 변명은 있다.
30대까지는 넓은 의미의 교육과 성장의 기간이다.
60대 중반까지는 직장과 더불어 일해야 하고,
60대 후반부터는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내 친구 박대선 총장은 연세대에서 가장 오래 연임했다.
내가 "어느 이사장이 있을 때 가장 좋았냐"고 물었더니 "최재유 이사장 때"라고 했다.
그보다 이름 높은 이사장이 여럿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했다.
박 총장은 "그분만큼 사심과 선입관 없는 애교심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 이사장은 회의 때마다 여러 이사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
"나도 그 문제를 위해 잘 아는 동문들과 원로 교수의 의견을 들었는데
○○○ 이사님 주장이 좋은 것 같습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는 것이다.
먼저 당신 생각을 앞세우지 않으니까 합리적이면서 공감을 얻은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이 "20대를 영입해야 한다"고 떠든다. 여성 의원을 몇%는 만들겠다고도 공언한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이 "20대를 영입해야 한다"고 떠든다. 여성 의원을 몇%는 만들겠다고도 공언한다.
그것이 과연 애국심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연령이나 성별이 아니다.
의원이나 장관은 여야 구분 없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라야 한다.
20~30대는 큰 인재로 성장할 기회와 경험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선배나 부모는 내 제자나 아들
딸이라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다.
크게 성장해 많은 열매를 맺을 나무는 오래 자라야 하는 법이다.
정신적인 문화 사업은 긴 세월을 요하게 된다.
100세가 넘은 내 선택은 지혜롭지 못할 수 있다.
100세가 넘은 내 선택은 지혜롭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연륜이 주는 교훈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정의와 진실은 나와 우리 편에만 있다'는 편 가르기는 당사자와 사회 모두에게 불행과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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