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14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소설가 백민석의 트위터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책과의 거리 좁히기입니다."
셀프 격리 생활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셀프 격리 생활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거리를 좁힌 책은 '박완서의 말'(마음산책 刊).
작가 사후에 나온 두어 권을 읽은 터라 아직도 남은 '말'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그랬나 봅니다.
큰딸인 수필가 호원숙씨는
"어머니 서재의 깊은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어머니가 직접 스크랩하여 모아놓으신 것들"이라고
출간의 변을 썼더군요.
피천득(1910~2007) 선생과 나눈 1998년 대화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피천득(1910~2007) 선생과 나눈 1998년 대화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당시 칠순을 눈앞에 둔 소설가(1931~2011)와 미수(米壽)였던 영문학자의 만남이었죠.
안부를 묻다가 피 선생이 이런 말을 합니다.
"별로 들 게 없어요.
"별로 들 게 없어요.
우리 내외가 먹는 것이라야 육식보다는 채식을 위주로 하고, 또 소식을 하니까 하루 1만원이면 남아요.
옷은 평생 입을 것들이 있으니까 전혀 돈 들 일이 없고요. 아들애가 작아진 옷을 주기도 해요.
아들애가 몸이 나는지 옷이나 구두가 자꾸 작아지는 모양인데, 내겐 여전히 맞으니까. (…)
그 밖에 파출부 아줌마가 일주일에 서너 번 오니까 거기서 돈이 좀 들고,
가끔 제자들과 나가서 좋은 것 먹을 때가 있어요.
먹고사는 데는 돈이 거의 안 들어요."
피 선생의 근검(勤儉)과 소식(小食)은 예전부터 유명했죠.
피 선생의 근검(勤儉)과 소식(小食)은 예전부터 유명했죠.
문득 그 무렵이 떠올랐습니다.
문화부 막내 기자였던 1999년,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피 선생을 처음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돌한 질문을 했죠.
"선생님, 노인이 되면 욕심이 줄어든다는데, 사실인가요?"
무례까지는 몰라도 비례는 분명했던 질문을 한 손주뻘 기자를 한참 들여다보던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그게, 인생이 그렇지가 않습디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선생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선생을 좋아하게 된 것은.
물욕(物慾)은 어쩌면 욕심 중에서 가장 아래 단계. 그 순간의 '위선 없는 정직'이 무작정 좋더군요.
두 분의 대화를 박완서 선생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선생님을 뵈면 모든 문제가 그렇게 쉬워지고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저도 인생의 쓸데없는 허세나 욕심을 덜어버리는 작업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버리면 버릴수록 사람은 더 넉넉해지는 법이니까요."
과잉 공포도, 턱없는 오만도 없이, 코로나의 3월을 슬기롭게 이겨내시기를.
과잉 공포도, 턱없는 오만도 없이, 코로나의 3월을 슬기롭게 이겨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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