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전국의 동네 책방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손으로만 꼽아도 시, 소설, 과학, 건축, 중고 전문 서점 등 다양한 서점이 곳곳에 생겼다. 하지만 동네 책방의 경영난은 여전해서 욕심 없이 시작해도 손익계산서를 두들기면 책방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곳도 많다.
책방의 주인들과 얘기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지속 가능성'이다. 과학 서점 '갈다'의 주인이기도 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와 나눈 얘기도 그런 것이었다. 그는 이 난국을 과학자 공동체에서 찾고 있었다. '서점 갈다'는 100명이 넘는 과학 관련자들이 돈을 모아 펀딩했다. 이렇듯 동네 책방들이 북카페부터 책방에서 머무는 북스테이, 좋은 책을 소개하는 '북쇼', 책방 특색에 맞는 글쓰기 모임이나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책은 영상 콘텐츠에 밀리고 있다. 그럼에도 왜 책이고 서점인가. 인터넷 검색은 속도의 세계이고 책의 사색은 느림의 세계다. 구글 검색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콘텐츠가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이다. 내가 저가 항공권을 산다 해도 이보다 저렴한 상품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불안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 아무리 오래 검색을 해도 검색은 우리에게 끝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에 반해 책은 구조적으로 닫힌 완결된 세계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의 뿌듯함은 정보의 폭우 속에서 닫힌 문을 바라볼 때의 안도감인지도 모른다. 열린 검색이 아니라 닫힌 독서와 사색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건 이 때문이다. 동네 책방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도 비슷하다. 책방 주인들이 큐레이션한 책이 책방의 DNA가 되는 것도, 책방마다 베스트셀러가 다른 것도,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어쩌면 닫힌 세계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선택의 폭이 아니라 깊이가 무한 가능성의 시대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동네 책방에는 발견의 기쁨이 있다.
입력 2020.03.1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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