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일방적 대북 구애, 워싱턴 반응은 냉소와 피로
방위비 압박에 우리 국민 거부감… 트럼프 재선 후 동맹의 운명 우려
문재인 정부가 4월 총선 전 한·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총선을 앞두고, 아무리 아닌 척해도 손발이 잘 안 맞는 동맹의 엇박자를
정상 간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해 희석시켜보려 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러시아 방문 소식을 듣고는
"이번엔 푸틴 대통령 방한 추진인가요"라고 물었다.
총선 전에 김정은 답방 가능성은 없고,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관심을 안 보이고,
시진핑 방한마저 연기되니 남은 나라는 러시아 아니냐는 뜻이었다.
한·미 모두 국내 정치적 고려가 외교정책을 압도하는 선거철이다.
문재인 정부는 4월 총선을 위해 모든 이슈를 갈아 넣을 태세이고,
미국에서도 트럼프는 오로지 11월 대선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맹의 속사정은 정상회담 한판으로 온기를 부풀려 총선용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미국의 거듭된 대화 재개 요청에도 북한이 대문을 닫아버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한반도 현안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한국에서 한·미가 10% 안팎의 인상률에 합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워싱턴 소식통들은 "아직 모른다"고 한다.
"협상 담당자들이 실무 수준에서 그런 이해를 공유했을 수는 있어도 최종 결론은 아직 아니다"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직접 챙기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섣불리 입을 떼지 않으려는 문제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협상 진척 과정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최근까지도 트럼프 탄핵 국면이었던 만큼 관련 내용을 브리핑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기대에 못 미치는 보고를 들고 가서 대통령을 납득시킬 수 있는 참모는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정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거론된다.
하지만 폼페이오는 이미 미 일간지 기고를 통해
"한국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 트럼프 입장을 충실히 따랐다.
역시 총선을 의식해서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북한 개별 관광과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등을 다시 꺼냈을 때
워싱턴에서 들리는 반응은 주로 냉소와 피로였다.
한쪽에선 북한 비핵화 진전 여부를 보면서 의논하자고 하기도 지친다며
'그냥 한국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버리고 싶다고 한다. 어차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쪽에선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제재를 피해 북한에 현금 퍼주기와 다름없는 관광 재개를 하자고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애당초 이념적 지향이 달라 신뢰를 쌓기 어려웠던 문재인·트럼프 정부이다.
여기에 북핵 접근법을 둘러싼 근본적 차이,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인상 요구 등이 뒤엉키면서
동맹의 미래에 무수한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워싱턴에서 한·미 동맹 옹호자들은 주로 의회와 국방부에 모여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제외하면 한국의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시위대가 주한 미대사관저의 담을 넘어도 손 놓고 있었던 한국 정부,
해리 해리스 대사를 향한 인신공격 등 일련의 사건들을
워싱턴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우회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불만을 해리스
대사를 향해 쏟아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워싱턴에선 '한·미 동맹이 지속될까'라는 의문이 물밑에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이것이 동맹인가'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위기를 벗어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를 생각하면 질문은 더 무거워진다.
동맹은 과연 지금처럼 유지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