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12 03:12
"금성에서는 비가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 내리고 또 내릴 뿐이죠.
저는 여기에서 10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폭우가 내리지 않은 적은 단 1분 1초도 없었습니다."
병사가 말했다. "바닷속에서 사는 기분이군."
중위가 몸을 일으키고는 총을 둘러멨다. "자, 이제 출발하는 것이 좋겠네. 태양 돔을 찾아야지."
ㅡ레이 브래드버리 '끝없는 비' 중에서(단편집 '문신을 새긴 사나이'에 수록).
비도 눈도 없는 메마른 겨울이다.
ㅡ레이 브래드버리 '끝없는 비' 중에서(단편집 '문신을 새긴 사나이'에 수록).
비도 눈도 없는 메마른 겨울이다.
시린 바람조차 휘몰아치지 않아 중국에서 날아온 먼지와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만 대기에 가득하다.
입춘이 지나 함박눈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사흘만이라도 비가 퍼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주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끝없는 비'는
우주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끝없는 비'는
한순간도 빗줄기가 멈추지 않는 금성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는 건조하고 뜨거운 행성이라는데
소설 속 금성에 추락한 네 명의 우주비행사는 쉬지 않고 쏟아지는 빗속을 한 달째 헤매고 있다.
지도를 더듬어 인공 태양과 따뜻한 음식과 보송보송한 침대가 있을 태양 돔을 기껏 찾아가보면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인의 정착을 막으려고 금성인들이 모두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체력이 고갈되고 희망은 바닥나고 식량마저 떨어지자 세 병사는 주저앉는다.
무엇보다 벌레처럼 스멀스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차가운 빗물이
결국 그들 모두를 미쳐서 죽게 만든다.
혼자 남은 중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돔을 발견한다.
눈앞에 떠오른 태양이 죽음 전 잠깐 찾아온 환영은 아닐까, 의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믿고 싶어진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만이 간절히 원하는 걸 얻는다고.
가뭄이 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들이 기둥에 머리를 짓찧으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지만
가뭄이 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들이 기둥에 머리를 짓찧으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지만
지금 그런 미개함을 바랄 사람은 없다.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행성에 살고 있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그래도 비가 내려주기를,
그래서 이 땅의 더럽고 불온한 것들을 깨끗이 씻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내 마음 하나만은 아닐 것 같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