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04 03:06
오르산미켈레는 피렌체 대성당과 시청 사이, 북적이는 거리에 자리 잡은 성당이다.
성당 같지 않은 네모반듯한 건물은 1337년에 곡물 시장으로 지어졌다가 1380년 이후 성당으로 전용됐다.
이 자리가 시장이던 13세기 말 원래의 목조 건물 벽면에 있던 성모자상은
놀라운 치유의 권능을 가진 것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후 지금의 건물이 서기까지 성모자상도 두어 차례 새 그림으로 교체됐지만 치유의 기적은 계속됐다.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로 활약하던 오르카냐(Orcagna, 본명 Andrea di Cione·1308~1368)의
거대한 대리석 닫집은 바로 그 치유의 성모자상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347년에 발생한 흑사병이 온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오르카냐는 네 면의 대리석 아치 위에 돔을 얹고, 안팎으로 조밀하게 구획을 나누어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정교하게 조각해 넣었다.
그 외에 청금석, 황금, 유리 등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눈부시게 장식한 이 닫집은
마치 건물 안에 고딕 대성당이 서 있는 것처럼 장엄하다.
후대에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조성 비용은
후대에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조성 비용은
성모자상을 관리하던 오르산미켈레의
신도회에서 조달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흑사병의 공포에 질린 군중이
치유와 안녕을 기원하며 성모자상에 그야말로 억만금을 쏟아부은 덕택에
신도회가 엄청난 이익을 거뒀던 것이다.
병의 원인도 치유법도 몰랐던 중세인들은 오직 신의 은총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전염병은 늘 인류를 위협해왔다.
다만 현대의 우리는 신이 아니라 백신을 믿을 뿐.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