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일본]19세기 말 일본의 정상급 海圖 비결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20. 1. 10. 15:15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56] 19세기 말 일본의 정상급 海圖 비결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20.01.10 03:1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1858년 일본과 수교한 영국도쿠가와 막부에 일본 연해 측량 허가를 요청한다.

항행 안전을 위한 근대 해도(海圖·nautical chart)를 구비하지 못한 막부는

고심 끝에 막부 관리의 동승을 조건으로 측량을 허가한다.


조수 간만, 수심 등을 측정해야 하는 해도 제작은 고도의 측량 기술을 요한다.

1861년 영국의 측량에 입회한 막부의 관리들은

해양 시대를 맞아 해도 제작 능력 확보가 국가적 과제임을 깨닫는다.


막부에 이은 메이지 신정부는 해도 제작에 더욱 의욕적이었다.

1870년 영국남해안 측량 허가를 요청하자 메이지 정부는 일본 측량선의 동행을 제안한다.

명목은 공동 측량이었으나 사실상 영국기술을 이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해양 패권국 영국의 해도 제작 능력은 당대 최고였다.

일본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은 영국은 성심껏 기술을 나누었고,

일본은 단기간 내에 세계 정상급 해도 제작 능력을 보유한 국가로 발돋움한다.

메이지 정부의 해군부(部)는 비사(秘史)·군무·조선·수로·회계 5국(局) 체제였다.

수로국을 별도로 편제한 것에서 신정부가 해도 제작에 부여한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1872년 발간된 최초의 자체 제작 해도 '육중국부석항지도(陸中國釜石港之圖)'를 필두로

일본의 근대 해도 제작을 주도한 인물이 16년간 수로국장을 역임하며 '일본 수로 측량의 아버지'로 불린

야나기 나라요시(柳楢悅)다.

막부가 근대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한 해군 전습소(傳習所)에서

서양의 수학·천문학·지리학을 두루 섭렵한 야나기

경위의, 육분의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한 삼각측량법의 달인이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현장형 기술 관료였다.

정책 결정자의 정확한 현실 인식,

우수한 인재의 적재적소 기용,

선진 외부 파트너 확보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

해도 제작 능력을 일본이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현대에도 통용되는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 전략의 전형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9/20200109041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