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소중함 (김규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1. 20. 16:38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34]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소중함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19.11.20 03:12

김규나 소설가
김규나 소설가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다면, 칼로 남작을 찌르지 않았다면,
양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여기서 이렇게 설탕에 절인 레몬과 파스타치오 열매를 먹지 못했을걸세."

팡글로스가 말했다. "맞습니다."
캉디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

ㅡ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중에서.


남작의 아름다운 딸, 퀴네공드를 사랑한 죄로 성에서 추방된 캉디드
전 세계를 떠돌며 온갖 고통과 불행을 경험한다.
생사 위기에 빠질 때마다
'세상은 최선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스승 팡글로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기나긴 고생 끝에 캉디드가 얻은 것은 소박한 밥상세파에 떠밀려 늙고 못생겨진 퀴네공드뿐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평생을 애쓰며 살아온 것일까.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1759년에 발표한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통해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기아와 질병, 약탈과 전쟁 같은 불합리가 넘쳐난다 해도,
서로 미워하고 거짓말하는 위선자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 애쓰는 존재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많은 경험을 통해 지나친 비관이나 낙관을 경계하게 된 캉디드가 깨달은 것도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단순한 진실이었다.

자유를 지키려는 홍콩인항쟁이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비무장 시민들이 경찰 총에 맞아 쓰러지고 체포된 사람들이 잇따라 변사체로 발견되는데도
두려움에 굴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중국이 시위 참여자를 '폭력 범죄 분자'로 규정하고 최강 대테러 부대 투입했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홍콩 시민들이 지키려는 것은 높고 눈부신 그 무엇이 아니다.
어디든 가고 오고 머물 수 있는 자유, 최루탄도 물대포도 총격도 없는 거리, 고막을 찢는 음향 대포 대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다.
소중한 줄 모르고, 지키지 않으면 빼앗긴다는 걸 모르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 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0/20191120000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