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는 600여 명의 탄광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산크리스토발에서 600㎞를 걸어온 주된 이유는 사측과의 임금 분쟁이었지만,
그 속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낙서 뒤로 이들이 손에 쥔 깃발이 보였다.
볼리비아는 리튬 매장량 900만t(세계 2위) 등 자원이 풍부한 국가다.
그러나 2006년 집권한 모랄레스는
자원 수탈을 막겠다며 외국 자본 배제, 에너지 산업 국유화 정책 등을 펼쳤다.
자연히 개발 속도는 느려졌다.
노동자들은 처음엔 개발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라 여겼지만,
자원을 무기 삼은 정권 유지가 속내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최근 청년 100명을 뽑아 세계 각지로 보내는 본지 프로젝트 '청년 미래탐험대 100'을 통해
볼리비아에 다녀왔다.
그들이 만든 급진적 환경보호법안을 전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실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1인당 GDP 3548달러, 남미 최빈국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도시를 벗어나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나무를 패 식사를 해결하는 원주민,
난방은커녕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 유명 관광지 우유니의 호텔,
칫솔 등 간단한 생필품도 볼리비아산을 쓴 기억이 없다. 인근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것이다.
수도 라파스에선 부유층이 모여 사는 저지대를
차로 10여 분만 벗어나면 40여만 명이 사는 흙벽돌 빈민가가 펼쳐진다.
이런 나라를 잘사는 나라라고 치켜세웠던 사람이 지난 10일(현지 시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모랄레스다.
그가 구세주로 통하던 때도 있었다. 쇼맨십과 설득에 능해서다.
라파스 의회 외벽에 숫자판이 반대, 시침과 분침도 거꾸로 도는 시계를 설치했다.
유럽과 미국 등 북반구 중심 질서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29층의 거대한 대통령궁을 건설한 뒤 '국민의 위대한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생가엔 박물관을 지었다.
지지 기반인 원주민을 의식해 알파카 스웨터를 입는다.
설득에는 돈이 동원됐다.
나랏돈으로 노인·임신부·학생 등에게 연간 34~350달러의 현금을 줬다. 국민 3분의 1이 수혜자였다.
빈곤층 89만명에겐 전기료를 깎아주고 재임 기간 중 최저임금을 4배 올렸다.
그사이 흑자였던 재정 수지는 취임 후 GDP의 8.3% 적자로 곤두박질쳤다.
모랄레스는 사임 하는 순간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직도 개혁할 일이 남았고 적임자는 자신인데 왜 쿠데타의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유리한 통계를 모아 극빈층 비율이 줄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경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절망적인 것은 아직도 추종자가 많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늪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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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호구(虎口) 시대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